우리를 반겨준 것은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었던 우리 부부가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누군가가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상의 후에 내가 먼저 석사 과정을 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IELTS 시험 성적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라이팅과 스피킹이 번갈아 애를 먹였다. 그래서 비자 신청이 늦어졌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배려해 다른 국가의 비자 긴급 신청 서비스마저 중지된 상태였다. 비자를 신청하고 3주를 애타게 기다렸다. 첫 수업은 9월 28일이었는데 9월 22일에 비자가 나왔다. 가격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서 두 과목의 첫 수업을 포기하고 29일 비행기 표를 샀다. 왕복이 아니라 편도행이었다.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집은 영국에 계신 분 도움을 받아 페이스타임으로 보고 나서 계약을 진행했다. 집에는 시월 중순에나 들어갈 수 있어서 3주 정도 머물 곳이 필요했다. 에어비앤비에서 일정과 가격대를 설정하고 검색했다. 시내 중심에 있는 학교 근처에는 예산에 맞는 곳이 당연히 없었다. 점점 범위를 넓혀 가다가 템즈 강변에 있는 숙소를 발견했다. 방은 하나였지만 거실 소파를 침대로 만들 수 있었다. 그 금액에 썩 괜찮아 보이는 숙소였다. 게다가 ‘펫 프렌들리 Pet-friendly’라고 쓰여 있었다. 그 문구는 주인이 상당히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일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비행기 안에서 14시간, 짐 찾고 수속하고 택시 잡는데 한 시간, 택시로 숙소까지 한 시간을 이동하며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무제한 스크린 타임을 즐기다가 잘 시간을 한참 넘겨 잠이 들었다. 나는 출발하기 전날도 짐을 풀었다 쌌다 하느라 거의 못 잤는데도 잠들지 못했다. 입국 심사는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 한가득 싸들고 온 약들을 버리라고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 이민가방과 캐리어를 끌고 졸린 아이들을 데리고 숙소까지 어떻게 갈지 여러 생각에 시달렸다. 영어 리스닝 연습하는 심정으로 영화를 틀어놓고 멍하게 보면서 긴 시간을 견뎠다. 열 시간이 넘어가자 정말 곤욕스러웠다. 허리며 어깨, 목이 아파왔다.
영국 시간으로 새벽 2시쯤 도착했다. 아이들을 깨워 입국심사를 받았다. 서류를 보여주니 학교 이름을 물었던 것 같다. 알아듣지 못할까 봐 초긴장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아주 빨리 끝났다. 하나하나 번역해 온 약 처방전들은 보지도 않았다. 부쳤던 짐들을 찾아 바리바리 끌고 택시를 탔다. 여전히 긴장한 채로 구글 지도를 켜서 택시가 잘 가고 있는지 살폈다. 여기가 지구 어디쯤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창밖으로 눈썹달이 예쁘게 떠있었다. 사진을 찍었는데, 엇? 셔터 소리가 안 났다. 영국에 도착한 것이 실감 났다.
에어비앤비는 가파른 계단이 많은 2층이었다. 주상복합 건물 같은 특이한 구조였다. 남편은 그 무거운 가방들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나는 아이들을 침대에 눕히고 둘 사이에 그대로 뻗었던 것 같다. 거실 침대로 나가지도 못한 채 불편한 줄도 모르고 깊은 잠을 잤다.
아침이 밝아왔다. 가방에서 짐을 꺼내려는데, 희고 제법 긴 털들이 눈에 띄었다. 거실 러그에도, 창틀에도 셀 수 없이 있었다. 창고에 있는 육중한 청소기를 꺼내 청소를 시작했다. 낯선 멍멍이 냄새만 진동하고 털들은 없어지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먼지통이 가득 찬 것 같았다.
내가 에어비앤비 청소기 먼지통까지 비워줘야 하나 화가 났다. 컴플레인을 하려다가 영어로 어렵게 그것을 하느니 그냥 내가 하고 말지 하며 청소기를 열었다. 정말 숨이 탁 막혔다. 엄청난 양의 개털을 빼고 또 빼냈다. 펫 프렌들리라는 것은 본 적도 없는 개의 흔적과 지내야 한다는 뜻이었나 보다. 그걸 모르고 훈훈하게 친절을 기대했던 것이다.
이 집이 나의 예산 범위 안에서 검색이 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옆에 헬기장이 있었던 것이다. 수시로 뜨고 내리는 헬리콥터 소리는 요란스러웠다. 아이들은 신났다. 밥을 먹다가도 헬기 소리가 나면 창가로 달려갔다. 질리지도 않는지 헬리콥터가 오갈 때마다 이번엔 무슨 색이었는지 어떻게 떠서 날아가는지 관찰했다. 창 밖으로 보이던 템즈강에는 우버 보트가 정기적으로 다녔다. 게다가 경비정, 화물선 때로는 조정 보트까지 그야말로 해상 교통수단 전시장 같았다.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숙소였다.
헬기 소리는 시끄러웠지만 강 너머로 해가 지는 풍경은 황홀했다. 강 위로 떠다니는 것도 바라보기 좋았다. 새벽에 강변을 따라 뛰는 사람들을 마냥 구경했다. 투명한 식탁에서 낯선 식재료들을 탐색했다. 그곳에서 우리 가족은 조금씩 적응을 해 나갔다. 개털 뭉치를 치웠던 일도 추억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