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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Aug 13. 2024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이해하고 싶은, 적어도 이해해보려 했다 말을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과의 단절된 시간의 간극은 넓고 깊습니다. 그나마 평상시 조금씩 나누던 대화들은 마음의 온기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들이 아니죠. 철저하게 유물론적이고 현실적인, 그러나 가족 외의 다른 민중에게는 너그러운 이분법의 척도에서 시작된 것들이라 두세 마디를 넘어 이어져 본 적 없는 종류의 것들이죠.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대화의 기회조차 박탈한 채 세상을 등집니다. 남겨진 나는 홀로 부고장을 작성하고, 곧 뒤따를 것만 같은 어머니를 부축해 상을 치러내야만 하죠. 자, 여러분이 그런 나라면 이 순간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만우절이라 한들 그런 장난이나 유머가 오가는 집안도 아니었다.

                     - 아버지의 해방일지, p.7






 첫 장을 열자마자 부고라니요. 그것도 문맥을 살펴보자면 예고치 못한 사고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생의 마감을 작가는 가장 첫 줄에 던져놓습니다.


 한 손에 폭 감기는 조그만 초록색 표지에 적힌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펼쳐듭니다. 제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존재인 아버지를 정지아 작가님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했었죠. 실제로 용기 내어 펼쳐 본 건 얼마 전이었어요. 유독 읽기를 미루게 되던 책이었죠. 참 얄밉게도 작가는 그다음이 궁금해서라도 책장을 넘기게 만듭니다.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당신은 그를 미워하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안달이 나든요.









 대장부의 풍모를 갖고 태어났으나 이름만은 세상 여린 '고아리'라 알게 모르게 수모를 겪으며 자란 주인공. 그녀의 눈으로 아버지 고상욱 씨를 봅니다. 빨치산 활동으로 오랜 감옥살이를 마치고 깡촌인 고향으로 내려와 <새 농민> 정보에 따라 '문자농사'를 짓습니다. 흉작만 면하는 농사일 중에도 동네 사람, 즉 민중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분이시죠. 고상욱 씨로 인해 집안 일가는 연좌제로 묶여 알아주던 수재였던 작은집 길수 오빠는 바라던 사관학교 입학도 하지 못하고, 말단 공무원직을 전전하게 되었으며 고상욱 씨 동생은 알코올중독자로 매일 말없이 술만 마셔댑니다.


 한 마을이 다 불타 없어져버리기도 했던 흉흉한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라 살아남은 고상욱 씨에 대한 원망이 깊죠. 가만히 앉아 집에만 칩거해도 온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쏟아지는데, 고상욱 씨는 고문으로 인해 사시가 되어버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램이 오직 하면 그랬겄냐!"란 말로 그의 사상 속 민중을 돕는 일에 몰두합니다.


 그런 아버지로 인해 고생하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또 자신의 세상이 좁혀진 이유에 대해, 끊어진 인연들의 중심에 놓인 존재를 멀리하게 된 아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자신이 모르던 날들의 이야기를 알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신파 아니냐라고 말할지도요. 아리의 1인칭 관찰자 시점은 매우 냉소적이고 냉철하죠. 아버지의 행동을 자신의 눈으로 서술함에 있어 거침이 없어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에 독자인 우린 그 이면의 동기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책장을 오래 붙들고 있을지도 몰라요.


 아버지 무등을 타고 마실 다니는 걸 제일 좋아하던 어린 아리가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아버지와의 간극을 끝내 좁히지 못하고 등져버린 시간들이 장례식장을 찾아오는 이들의 인연에 의해 하나둘씩 기억 속에서 환원됩니다. 그녀는 알지 못했어요. 출소 후 남들이 다 빨갱이라 손가락질하는 고향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결심의 이유에 대해서요. 어쩌면 아버지 고상욱 씨는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는지도 모르겠어요. 자신의 옆에서 죽어간 전우들, 이념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틈도 없이 그저 살기 위해 산으로 숨어든 어린 동지들의 죽음을 지켜본 자의 책임감은 어떻게든 살아 다른 이들을 돕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외로운 분투기로 이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적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p.102






 질 게 뻔한 싸움을 하는 이십 대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목숨을 살려주었던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려했던 이십 대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p.181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아빠, 나는 들을 리 없는, 유물론자답게 마음 한 줌 남기지 않고 사라져, 그저 빛의 장난에 불과한 영정을 향해 소리 내 불렀다. 당연히 대답도 어떤 파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밤은 깊어가고 정신은 더욱 맑아졌다.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p.231












 새로 시작하는 브런치북의 첫 책을 두고 오래 고민했습니다. 아직 저도 화해를 시도해보지 못한 존재가 있기에 아리가 평생을 두고 미뤄 온 아버지와의 온전한 마주함 혹은 들여다보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갈등이 해소되는지 지켜보며 이 책을 첫 주자로 골랐습니다.



 누군가의 딸로 살아내야만 했던 시간들 속에서 받은 상처나 냉소들이 삶을 비틀리게 만들지 않고 마음속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강단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죠. 그러다 보면 뒤따를 수밖에 없는 거리 두기로 인해 멀어진 인연들은 관계를 회복하기 너무 늦어버릴 때도 있죠. 머뭇거림 사이 고여 드는 원망들이 때로는 일상의 삶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생의 마지막 배웅자리에서 만난 아버지의 삶의 조각들을 받아 든 아리의 눈으로 저를 들여다봅니다. 정지아 작가의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또 읽으니 마음의 굳은살이 연해지며 막 끓인 죽 한 그릇을 비운 듯 마음이 뽀땃해집니다.


 여러분들 마음속 그늘에 자리한 이름이 있다면, 이 책의 책장을 넘겨보시길 감히 권합니다. 저처럼 조금은 더 뽀땃해진 시선으로 마주할 마음의 온기가 생기실 거라 믿습니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가족사진 : 김진호

https://youtu.be/XvHlpj4Hu3M?si=5ykPOtdMne5g_-cv















#아버지의해방일지

#김성근작가님사진

#사부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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