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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Sep 10. 2024

바깥은 여름

김애란




 물러간 여름이 물러져 돌아왔다. 발목을 감싸고 올라오는 습기를 걷어내며 오른 버스. 좌석을 찾아 앉고 잠시 눈을 감는다. 희미한 땀냄새들에 섞인 저마다의 서사는 침묵과 함께 복도를 타고 빈자리를 채워간다. 나는 거기 어디쯤 같이 따라오지 않은 침대 위 한 모퉁이에 잠든 정신이 뒤늦게 소환되어 몸을 따라오길 기다리는 중이다. 그때 버스 앞쪽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ㅡ 승객 한 분, 한 분 모두 안전띠를 하실 때까지 출발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충남고속의 ㅇㅇㅇ입니다. 오늘 우리는... (중략)... 운행 중 혹시 화장실 등 급한 용무가 생기신다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처음이다. 비행기 기장처럼 낭랑한 목소리로 출발을 알리는 버스기사님. 덕분에 짧은 여행이 유쾌해진다. 문득 기사님께 다가가 속삭이고 싶어 진다.


ㅡ 서울 말고 강원도 가 주세요. 기왕이면 물빛이 끝내주는 바닷가 해변으로요.







 삶에도 분명한 목적지가 있다면, 내일의 정확한 계획표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의 오늘을 보낼까? 커다란 프롬프터가 내 시야 상향 30도 위에서 켜지며 오늘 일어날, 혹은 해야 할 일들이 깜박이며 하나씩 지워지고 채워진다면 불안함과 초조에 대한 강박이 사라질 수 있을까? 채워야 할 것들에 대한 갈망이 만든 허기로 허덕이는 시간들이 잠재워질까? 기사분의 친절한 안내가 캘리포니아 출신의 내 친구 아닌 남의 친구 시리가 떠오른다.


ㅡ 시리, 오늘 어디 갈까? 습도 20% 미만의, 왕복 2시간 반경의 미술관, 휴양림 등등을 알려줘.


 시리를 부르니 대답 없는 나의 빅스비는 부루퉁한 먹빛의 화면 뒤로 숨어버린다.




 쓸데없는 상상으로 피식 웃음이 난 나는 3번째 읽고 있는 <바깥은 여름>을 펼쳐든다. 7편의 단편은 각자의 무늬를 갖고 있다. 등장인물은 선명하고 또렷해서 그들의 이름만으로도 입고 있을 옷, 머리스타일, 말을 하는 방식과 표정이 그려진다. 소설을 읽을 때 가독성은 인물에 대한 상상이 수월해야 이루어질 텐데 김애란의 소설은 책을 펼치자마자 활자의 영상화가 가능한 놀라운 흡입력이 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는 장미색 비강진이라 불리는 일종의 피부감기에 해당하는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명지가 등장한다. 자신의 반 아이가 물에 빠지자 아이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남편 도경을 잊지 못하는 그녀. 사촌언니의 배려로 스코틀랜드의 한적한 구시가지에서 머물게 된다. 자신의 몸에 열꽃처럼 피어나 검자줏빛 상흔이 되어 흰 살비듬을 만들어내는 반점을 보며 스스로가 포탄이 되어 산화되고 있는 중이란 생각을 한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공간에서 남편이 하던 것처럼 기계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캘리포니아산 그녀, 시리와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ㅡ 아니에요, 슬퍼요.
 나는 앞의 말을 정확히 반대로 뒤집어보았다. 어린아이 입에 고기를 넣어주듯, 시리가 인간의 언어를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말한 것이다.

 ㅡ 제가 이해하는 삶이란 슬픔과 아름다움 사이의 모든 것이랍니다.
 ㅡ ......

 위안이 된 건 아니었다.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거나 감동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시리로부터 당시 내 주위 인간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던 한 가지 특별한 자질을 발견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예의'였다. 내친김에 나는 그즈음 가장 궁금하던 것 중 하나를 물어보았다.

ㅡ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표정을 알 수 없는 시리의 캄캄한 얼굴 위로 지성인지 영혼인지 모를 파동이 희미하게 지나갔다. 시리는 무척 곤란한 질문유 받았다는 듯 인간에 대한 '포기'인지 '단념'인지 모를 반응을 보였다.

 ㅡ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중, p238








 치유되지 않은 몸과 함께 남편의 부재를 마주해야 하는 집으로 돌아온 명지는 가득 쌓여있던 우편물에서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남편 도경이 구하다 죽은 제자 권지용의 누나가 쓴 편지였다. 갑작스러운 마비증세로 학교도 그만두어야 했던 지용의 누나는 자신의 동생의 마지막 순간에 손을 내밀어 구해주려 한 도경에 대한 마음 깊은 감사를 전하며 홀로 남은 자신 또한 살아가려 노력할 테니 명지 역시 잘 살아달라 부탁을 한다. 어린 정인의 편지를 받고서 명지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아닌 제자를 살리는 일을 한 남편에 대한 원망을 접고 그가 죽음이 아닌 삶을 향해 손을 내밀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우리의 삶은 매일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한다. 다양한 기회비용을 선택지 아래 빼곡히 기록해 두고 차분히 비교한 뒤 이루어지는 선택들도 시간이 지나 후회가 남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그때 이랬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성의 시간의 속성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들. 그리고 한숨. 하지만 우리들 누구도 삶과 삶의 반대편의 선택지에 관해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의 제목처럼 그 순간의 선택에 대한 행위자의 회고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떠나간 이들로 인해 우두커니 부재로 인한 침묵과 어김없이 찾아오는 일상의 시간에 갇혀 방향을 잃어버린 이들의 회복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밖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풍경의 쓸모> 중 p. 182

 


 우리의 삶에 바빠 어디선가 흘려들은 누군가의 사연을 호기롭게 입방아에 올리거나, 그런 일을 겪은 이가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란 생각으로 하루를 넘기고 곧 잊어버리는 타인의 시간을 살짝만 흔들려도 눈꽃으로 부서져 내리는 스노볼의 공간처럼 다채롭게 보여주는 김애란의 시선으로 나는 나와 내 주변의 삶을 톺아본다. 이런 것이 바로 소설을 읽는 이유이자, 소설을 그리워하게 되는 힘이 아닐까?






 그리고 이 책 속에 수록된 <침묵의 미래>는 언어와 문화, 다수가 될 수 없는 소수의 언어 사용자들의 소멸에 대해 서술한다.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몇 명일까. 나는 이 세계에서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 순간, 그 말에서 빠져나온 숨결과 기운들로 이루어진 영靈이다. 나는 커다란 눈目이자, 입口, 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言이다. 나는 단수이자 복수, 안개처럼 하나의 덩어리인 동시에 각각의 입자로 존재한다. 나는 내가 나이도록 도운 모든 것의 합, 그러나 그 합들이 스스로를 지워가며 만든 침묵의 무게다. 나는 부재不在의 부피, 나는 상실의 밀도, 나는 어떤 불빛이 가물대며 버티다 훅 꺼지는 순간 발하는 힘이다. 동물의 사체나 음식이 부패할 때 생기는 자발적 열熱이다.

     - <침묵의 미래> 중 p.124



 매일 사용하고 입 밖으로 꺼내는 언어를 다양한 시각에서 정의하는 문장으로 시선을 사로잡더니 작가는 중앙 정부에 의해 사막 한가운데 지어진 언어 박물관에 갇혀버린 천여 명의 소수 민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독을 날카롭게 벼리다 자신들의 모어를 잊어버리는 이들.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10명 이하의 부족에서만 뽑혀 왔다는 이들은 각각의 말로 자신들이 여기로 온 이유에 대해 부당함을 말하지만 소통의 부재로 외부로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는다. 그저 관광객들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 등등의 말을 하는 마네킹처럼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글을 읽을 때마다 지구상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소수 민족의 불행한 역사와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탄압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란 생각을 하며 몰입하게 된다.




 언젠가 '너무 추워 신조차 살 수 없는' 행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 별 둘레엔 마지막 언어의 꿈과 비명이 메아리쳐 겹겹의 띠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색색의 넓적한 고리 위에 한 부족의 언어를 물감처럼 풀어 종이로 뜬 것 같은 영혼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고. 우리가 죽으면 그 속의 황색 먼지 또는 얼음 알갱이가 된다고 했다. 내가 그런 아름답고 차가운 것이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지만 우리가 이곳을 떠난 뒤에도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싫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내 화자를 떠나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소문은 틀렸다. 우리의 종착지는 신의 입김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행성이 아니었다. 우리가 죽은 뒤 한번 더 죽게 되는 장소는 저기 먼 내세도, 우주도 아닌 지상의 공장이었다. -<침묵의 미래> 중 p.144



 놀라운 상상력이 만들어 낸 언어의 靈을 따라 지구상의 마지막 언어 사용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하는 소설. 그들을 희고 쓴 고독의 간수들이 진물처럼 흘러내리는 황량한 사막의 한가운데로 몰고 간 문화 패권주의의 강국들의 무정한 눈길이 감시카메라로 24시간 돌아가는 언어 박물관에 내가 갇힌다면이란 상상을 하니 몸이 떨려온다. 단편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굉장할 것 같은 소설이다.



 늘 이야기를 꿈꾼다. 다양한 인물들이 정교한 세계를 구축해서 살아가는 작고도 거대한 소우주 속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잊히지 않는 이야기. 이런 소설을 만난다는 건 독자가 누리는 큰 즐거움이 아닐까? 7편의 단편 중 당신의 마음속에 제일 깊이 와닿는 소우주는 어떤 것일까?












* 같이 듣고 싶은 곡


이소라 - When I Dream



https://youtu.be/tbEWCs_ni98?si=7JbhcwAYJTwDK3Fn







#바깥은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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