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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Sep 24. 2024

그리운 것은 모두 달에 있다

권대웅




 지구가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내쉰 듯 갑작스레 지열의 뜨거운 기운이 물러났어요. 서늘해진 공기 사이 더 선명하게 들리는 풀벌레 소리로 달라진 바람의 결을 느낍니다. 이제야 가을이 온 것 같아 하늘을 향해 팔을 벌려 봅니다.



 달빛이 환하게 제게 쏟아져 내립니다. 별부스러기들과 함께 내려오는 달빛의 밀도가 달라져 있어요. 어둠의 입자가 서풍에 밀려 흩어진 사이를 촘촘하게 채우는 유백색 달빛은 세상을 좀 더 보드랍고 평온하게 만들어 주죠. 모든 사물이 유약을 바르고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각각의 흠들이 다 메꿔지고 가려진 순간, 온전히 드러나는 흠결 없는 모습으로 말이죠.  

권대웅 시인의 산문집을 펼쳐 듭니다. 달빛을 노래하는 정말 따뜻한 시가 생각나서요. 들어보실래요?





그리운 것은 모두 달에 있다
                                                    권대웅


밥 먹으라고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
늦은 밤 골목길을 걸어오던 아버지 휘파람
텅 빈 초등학교 운동장
음악실에서 들려오던 풍금소리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처럼
저 달 속에서 살다가 가을이면
천둥호박이 부풀어 오르는 가을밤이면
두둥실 달의 그리움도 여물어
지상에 외로운 그대 만나러 온다
보따리 가득 머리에 이고
아들집 오는 어머니처럼 다 나누어 주고도
더 주고 싶은 달의 마음
둥글어라
풍성한 그 손길에
들꽃들 외롭지 않고
밤하늘 나는 가을새 날개
따뜻하여라
달빛이 마당에 쓰는 편지를 읽는 귀뚜라미
잘 살았느냐
추석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처럼
나뭇가지 위 휘영청 찾아와
그리운 날들 모두 어루만져주고 가는
저 달
하늘색 나무 대문집에서 바라보던.











 어린 날 달은 제게 완벽한 상상의 공간이었어요. 달에 산다는 월궁항아가 되어 하늘에서 드리운 동아줄을 따라 잠시 내려와 세상에 사는 중이라 상상하며 제게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자적 시점으로 바라보려 했죠. 그러면 부당함이나 분노, 혹은 슬픔으로 흐려지던 시선이 또렷해졌죠. 저는 잠시 이 세상에 내려온 항아님이었으니까요. (왜... 왜유! 그런 상상해보면 안되간유?)



 옛날의 천문학자들은 삼각측량법을 이용하여 지구와 달의 거리를 측정했답니다. 달의 시차(parallax)를 측정하여 삼각형의 두 변을 알고, 이를 통해 나머지 변인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를 계산하는 방법이죠. 현대에는 더 정확한 방법으로 레이저 거리 측정(Lunar Laser Ranging) 기술을 사용해요. 지구에서 발사된 레이저를 달 표면에 설치된 반사경에 반사해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하여 거리를 계산하는 방법이죠. 그렇게 얻어진 지구와 달의 평균 거리는 약 384,400km이랍니다. 달의 타원형 궤도로 인해 가장 가까운 지점과 가장 먼 지점으로 조금씩의 변화가 발생하기에 평균거리로 계산하게 되는데 달을 향해 자동차를 몰고 간다면 얼마나 걸릴까요?


 수학적, 물리적 시간을 넘어서 달이라는 공간을 한없이 다정한 상상의 공간으로 만들어 준 권대웅 시인의 산문집으로 잠시 어린 날의 한때처럼 누군가의 삶 속, 한 장면 속으로 나들이를 나섭니다.









 삶이란 비가 그친 후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물방울처럼 영롱하면서도 눈부시게 아프고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먹고살아야 하는 그 끈끈함에 사지가 매달려 있지만 이 삶은 너무 숭고하며 반짝이며 아름답다. 그래서 아프다. p. 62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 아름다운 기억이나 추억도 상처가 된다는 것을 보라를 통해 알았다. 더불어 어떤 상처도 아름다운 진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보라의 바다 너머로 멀리 황금빛 밀밭이 지평선까지 닿아 있다. 라벤더와 밀밭이 만나는 어느 언저리까지 흙담으로 쌓아 올린 오두막이 오도카니 앉아 있다. 그것은 또 다른 명상이다. 평화이다. 눈앞에서 그 풍경이 점점 멀어지고 사라져 간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처럼 이 순간들이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 "다시 와야지." 나도 모르게 그 말들이 나왔다. 아름다웠던 순간, 찰나를 영원으로 포착할 수 없어 인간에게는 그리움이 생기나 보다. 그래서 뒤돌아보고 아련해지고 애틋해지고, 그렇게 그리워져 또다시 찾게 되는가 보다. 이 세상에 당신과 내가 다시 온 것처럼...  p.141



 모두가 뒤돌아볼 겨를 없이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니다. 사실 모두 시시때때로 뒤를 돌아보며 산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앞날을 볼 수 없고 예측할 수 없기에. 모두 살아온 날들로 가늠해야 하기에 늘 뒤를 돌아보며 산다. 그러면서도 뒤돌아볼 겨를이 없다는 것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방향으로 앉아 가는 기차 승객처럼 앞은 보지 못하고 뒤만 보고 산다. 그러면서도 매 순간 앞만 생각하기 때문에 광활하고 아름답고 여유롭게 뒤로 펼쳐지는 겨를을 두지 못하는 것이다. 여행은 앞이 아니라 뒤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멀리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먼 뒤로 가는 것이다. 내가 있기에 아주 오래전에도 있었던 저 뒤편 과거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미래란, 앞날이란 늘 미증유未曾有의 불안이어서 아홉 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열 개를 채워야 하기에 없는 것이고, 없다고 말하는 것이고, 그래서 겨를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p. 224


 사랑해. 귓가에 대고 따스한 입김으로 그 밤에 했던 말도 사라진 것이 아니다. 사랑했던 그 순간의 강한 파동은 우주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래서 그 주파수로 언젠가 당신에게 다시 온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어졌더라도 사랑은 없어진 것이 아니다. 몸이 없어진 것이지 마음이나 기억, 영혼은 사라지지 않았다. 골목길을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고 싶어질 때, 햇빛 아래 갑자기 눈물이 날 때, 바람도 불지 않는데 나뭇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을 떠난 사랑이 분자 혹은 에너지로 온 것이다. p. 236



 덜 가졌어도 주고 주고 또 주고, 없어도 사주고 사주고 또 사주고, 가능한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면서 나무와 꽃과 새와 바람과 구름을 친구로 사귈 줄 아는 나이, 그런 어른들, 정치인들, 기업인들이 많은 나라일수록 세상은 너그러워지고 여유로워지고 평화로워진다. 추잡스러워지지 말자. 如如해지자. 보는 것, 말하는 것, 먹는 것, 듣는 것, 無心, 無住, 無着, 분별이 없어져 마음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것. 본래가 그렇게 둥글고 환한 것. 그런 어른으로 가자. 집 뒷산에서 꽃들을 보고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p. 289

 








 올려다보는 일은 걸음을 멈추어야 가능합니다. 시곗바늘에 밀리거나 쫓기며 하루를 보내는 우리에게는 잠시 멈추어서 올려다보는 일이 때로는 삶 전체가 휘청이는 일일수도 있어요. 균형이 깨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들어 걸음을 멈출 수가 없죠. 그런 기분 든 적 없으신가요?


 정말 갑작스럽게도 계절이 바뀝니다. 내가 살아가는 길 위의 나침반이 향하는 자취를 한 번쯤 더 살펴봐야 할 때인지도요.



 여러분의 그리운 것들모두 어디에 있을까요? 묻어둔 별자리 하나 가만히 꺼내어 살아갈 지표를 더듬어 보는 쉼표 같은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권대웅 시인의 달 여행, <그리운 것은 모두 달에 있다> 이 책과 함께요.

























* 같이 듣고 싶은 곡



강진아 : 멀어진 친구에게


https://youtu.be/HYhNYBTGmdY?si=RsxO3JKlZZeiyC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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