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임의 유럽 묘지 기행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없는지 알지 못해요.
그게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그러다가 그게 나타나면 단 한순간에 확실해지지요.
-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세트에 가면, 검푸른 바다 위로 정오의 태양이 내리쬐고 그 그림자 죽음처럼 고요히 살굿빛 기와지붕을 타 넘을 때, 나는 작은 검은 고양이가 되어 소리도 없이 그 옆을 지나가리라 꿈꾸었다. 그곳에 가면,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에 내 청춘의 서툰 욕망에 갇혀 새카맣게 타버린 시어들을 무심히 방생하리라, 마음먹었다.
p.344
나는 홀로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내 모든 작품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발레리를 읽었다. 그리고 내 기다림이 끝난 걸 알았다.
나는 순수한 너를 너의 제일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스스로를 응시하라.
오, 사색 뒤에 오는 보상. 신들의 고요에 던져진 그토록 오랜 시선.
- 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중에서
항상 무언가를 찬미하라. 찬미야말로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