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우리 오늘 이웃이랑 친한 사이 해버림'이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 시간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의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p.143
"나 조맹희, 시원하게 굴러보고 싶다."
삼십칠 년 동안 그럭저럭 살았고 지금 만족스럽냐고 묻는다면 만족했다. 하지만 '만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만족스러웠다. 갱신을 원한다면 모험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몰랐다.
p.52
나 이제 아모르파티를 알겠네. 전철역을 나서고도 집에 가지 않고 산책하는 날들. 노점에서 굽는 붕어빵 냄새. 담장 위를 걷는 고양이의 발걸음. 전동 킥보드에 올라탄 여중생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은총처럼 빛나는 저녁이 많아졌다.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p.76
송희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 흥하지도 망하지도 않는, 값이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는, 운이 좋아도 나빠도 그대로인 것. 어떤 비유도 아니고 상징도 아닌, 말하자면 그냥 100킬로그램의 손때 묻은 쇳덩이.
나도 몰라. 어쨌든 들 거야.
송희는 바벨을 쥐었다. 딱딱하고 차갑다. 하지만 내 손안에 있는 내 것. 내 몫의 약속.
등뒤에서 젖은 머리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럼 내가 증인이 될게.
다시 땅에 붙인 두 발바닥. 송희는 두 발 아래 깊이 묻혀 있는 검은 돌들을 떠올렸다. 시간과 열기의 압력 속에서 태어나 빚어진 것들. 그로부터 시작된 분화.
아득히 오래전부터 솟구친 힘이 마침내 도착하는 정확한 자리.
p.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