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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Aug 27. 2024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손오공과 삼장법사, 돈키호테와 산초, 셜록 홈즈와 왓슨, 소머즈와 스티브 등등 연결고리가 긴밀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서로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죠.
다른 이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를 두 사람만의 공감대와 심리적 유대감. 그 처음의 시작이 어떠했는지는 각각의 이야기 속을 살펴야겠지만요.







 여러분들의 이십 대에 이런 유대감을 갖고 있던 존재가 있었나요? 김기태의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서 니콜라이와 진주를 통해 의도치 못한 순간에 연결된 두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십 대의 고민과 아픔을 만났습니다. 니콜라이와 진주는 흰 봉투를 건네주며 담임선생님이 던진 한마디로 묘한 동지애가 생겨버리죠. "둘이 친하게 지내."라는 말. 밀린 납부금들의 고지서가 들어있을 흰 봉투와 함께 둘에게 전해진 말은 되려 가장 멀리하고 싶은 존재로 그들을 나누어버렸죠.


 이후 재외동포법 개정으로 4세대들의 장기 체류가 가능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영주권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니콜라이와 사회적 배려대상자나 기회균형 등의 대입제도로 지방 대학의 행정학과에 입학한 진주. 연결고리가 사라졌던 이들은 경기도 동남부의 한 도시에서 다시 만납니다. 마트에서 쏜살배송을 위해 주문품을 담아 포장하는 일을 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진주와 연봉 삼천팔백만 원을 벌어야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는 니콜라이. 둘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여전히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담보로 잡힌 채 허덕이며 일하고 있었죠. 지극히 평범하지만 꾀부리는 일 없이 열심히 살아온 삶이지만 비교대상인 또래의 다른 이십 대가 보이면 자신들의 삶이 그들보다 덜 치열해서 이렇게 사는 것일까라고 끊임없이 자문하죠. 평범함을 비속함으로 만드는 사회구조상의 문제는 아닐까, 저들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반문하게 됩니다. 그러나 작가는 다시 그들이 서로에게 갖게 된 유대감을 통해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위로를 건네와요.




'우리 오늘 이웃이랑 친한 사이 해버림'이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 시간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의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p.143





 인터뷰에서 작가가 단편소설 속에 인터내셔널가와 밈을 넣은 이유를 설명하는 걸 읽었죠.
“가장 많은 사람을 꿈꾸게 하고, 또 다치게 한 노래라는 점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노래가 아닐까 한다”라고 했다. “사람은 일을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더 많은 시간을 사랑하고 창조하는 데 써야 한다. 우리가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이 참된 자유일까…."

 진주와 니콜라이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 건 그들을 바라보는 이러한 작가의 시선에 자연스레 동조되었기 때문이랄까요?




나는 솔로다, 또는 환승연애 등의 예능프로그램들이 있죠. 프로그램에 나와 저마다의 약속된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호감을 표하며 알아가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동물원의 유리창 밖에서 공작새들의 무희를 지켜보는 것 같아요. 연봉, 직업, 거주공간, 자차유무 등등 사회적 조건을 날개에 붙이고 상대방의 주의를 끌기 위해 애를 쓰죠. 그들의 나르시시즘을 유쾌하게 풀어낸 또 한 편의 소설이 있습니다. <롤링 썬더 러브>죠.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날 용기를 내려는 주인공 조맹희.


"나 조맹희, 시원하게 굴러보고 싶다."
 삼십칠 년 동안 그럭저럭 살았고 지금 만족스럽냐고 묻는다면 만족했다. 하지만 '만족'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만족스러웠다. 갱신을 원한다면 모험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몰랐다.
                                p.52




 농장일을 하며 상대방을 알아가는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자신을 찍는 PD를 마음에 담게 되죠.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밝히지 않아요. 그렇게 고생하며 데이트 티켓을 따내지만 이런 연유로 결국 그녀는 상대를 고르지 않고 프로그램을 마치죠. 한없이 싱겁다가 무모하다 종잡을 수 없는 평범한 그녀 조맹희가 저는 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요? 프로그램 종영 후 뒤풀이 자리에서 만난 순무라 불리던 남자와 잠깐의 연애 비슷한 것도 해보지만 결국 가슴 뛰지 않는 연애에 정중하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돌아옵니다. 그런 그녀의 조용한 독백이 참 좋습니다.




  나 이제 아모르파티를 알겠네. 전철역을 나서고도 집에 가지 않고 산책하는 날들. 노점에서 굽는 붕어빵 냄새. 담장 위를 걷는 고양이의 발걸음. 전동 킥보드에 올라탄 여중생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은총처럼 빛나는 저녁이 많아졌다. 하지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많은 노래에 기대며. 많은 노래에 속으며.
                                          p.76






 단 두 편만을 들고 왔죠. 김기태의 소설을 통해 평범함의 범주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인물에 대한 거리 두기가 참 힘들게 만드는 소설가입니다. 각각의 단편소설 속에서 저는 주인공의 근접거리에 있는 불특정한 제삼자가 되어 인물이 하는 말과 행동을 기록하는 속기사가 된 기분도 듭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통속적인 인물들이 지닌 무난하거나 진부하거나 한없이 여린 부분들이 되려 그들 삶의 강점이 되어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중이라는 걸 보여주는 특별한 바로미터가 되는 걸 경험합니다.  



 인생을 반도 안 산 사람에게 자신들의 기준과 맞지 않는다고 도태된 인물이라 비난하는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일반적인 시선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그런 의견들쯤은 가뿐히 무시하며 아모르파티를 부르는 인물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세상의 갖가지 허례허식을 벗어던질 용기를 낸 이들이 현실에서도 더 많아지면 좋겠거든요. 저부터도 그렇게 살고 싶고요.


 김기태 소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는 2022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무겁고 높은> 이 같이 실려있습니다. 폐탄광촌에서 역도를 하는 소녀 송희에 관한 이야기죠. 한 번도 100kg를 들어 올리지 못하고 결국은 역기를 멀리 던져버리는 소녀. 가난 따위도 그렇게 던져버리면 좋겠다 싶었죠. 역도는 내려놓는 법을 모릅니다. 들어 올리는 법만 있죠. 내리는 건 던져버리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려놓는 법뿐만 아니라 깨끗하게 던져버려야 할 때도 모르죠. 그저 묵묵히 지고 걷는 법을 더 강요당해요. 그러기에 소설 마지막 송희가 직접 자신의 때를 정하는 그 순간의 증인이 되어 그녀의 마음을 읽는 순간이 정말 좋았습니다.



송희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 흥하지도 망하지도 않는, 값이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는, 운이 좋아도 나빠도 그대로인 것. 어떤 비유도 아니고 상징도 아닌, 말하자면 그냥 100킬로그램의 손때 묻은 쇳덩이.

 나도 몰라. 어쨌든 들 거야.

송희는 바벨을 쥐었다. 딱딱하고 차갑다. 하지만 내 손안에 있는 내 것. 내 몫의 약속.
 등뒤에서 젖은 머리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그럼 내가 증인이 될게.

 다시 땅에 붙인 두 발바닥. 송희는 두 발 아래 깊이 묻혀 있는 검은 돌들을 떠올렸다. 시간과 열기의 압력 속에서 태어나 빚어진 것들. 그로부터 시작된 분화.
아득히 오래전부터 솟구친 힘이 마침내 도착하는 정확한 자리.
                                         p.262






 이 외에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는 보편교양, 로나, 우리의 별 등등 모든 작품들이 매력적인 소설집입니다.











 김기태 소설가는 황지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영양제 조금 먹고 맥주 많이 마시는 사람” “루틴한 직장 다니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소설이 온당하게 읽히기 위해서라도 작품 뒤에 있고 싶다”라고 했다. 은둔 작가도 고민했지만, 약간 타협했다. “많은 독자에게 책이 닿으려면 저도 이 세상에 뭘 줘야죠. 제 소설 인물들을 보면 극단으로는 치닫지 않잖아요. 그런 유연한 체질이 제 안에도 있나 봅니다.”라고 말합니다.


  아, 이렇게 인터뷰해보고 싶어요. 세태에 포박되어 살 수밖에 없으니 통속소설이라도 깊이를 갖고 쓴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 이번에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했더라고요. 앞으로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 젊은 작기의 소설로 평범이 갖고 있는 다양성의 바다에서 마음껏 빠져 유영하는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신동엽 문학상 수상작품들




* 같이 듣고 싶은 곡


허회경 - 그렇게 살아가는 것


https://youtu.be/1Qtr8TznwNI?si=pHggK0BNwc3sWcfP












#두사람의인터내셔널

#김기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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