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점심식사 대신 산책을 선택할 때가 있다. 사무실에 앉아있다보면 운동을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운동할 시간을 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가끔은 배가 고파도 뭔가를 굳이 씹어서 삼키기가 영 거북스러운 날이 종종 오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사무실 건물의 뒷편에는 앉을만한 벤치와 그 뒤에서 팔을 길게 뻗어주는 나무가 있었다. 가끔은 그 아래 앉아서 멍하니 두 눈을 하늘에 두고 마음을 산책시키는 것이다. 물론 마음에게는 목줄을 채울 수가 없어서 수시로 시간을 확인해야했다.
세상 사는 게 알 수 없고 그래서 재미있다고는 하지만, 문득 그 모든 것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때로는 우주보다도 큰 범위의 궁금증일때도 있고, 때로는 너무나 지엽적이고 소소한 궁금증이기도 한데, 이렇게 공원에 앉아서 생각할 때에는 그 범위와 규모에 상관없이 오랫동안 머리에 머물곤 했다. 인주에 깊게 담갔다가 찍은 도장처럼, 공원을 박차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있게 되는 것이다. 사색, 깊은 생각, 혹은 알맹이 없는 고민일 때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삶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냥 이렇게 멍하니, 쓸데가 있든 없든 생각하는 시간이 그리웠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수업시간에 멍 때리거나, 하다 못해 책을 펴놓고도 내가 하고 싶으면 멍하니 딴생각을 할 수 있었다. 대학에 다닐 때도 내가 하고싶을 때 공부를 하고, 놀기도 하고, 또 필요할 때는 캠퍼스든 산이든 어디로든 가서 생각을 할 시간이 많았다. 물론 취직 이후에는 그런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었지만.
그림에도 여백이 필요하고 노래에도 간주 구간이 있으며, 소설이나 영화에도 맥없이 흘러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듯 눈 뜨고 살아가는 시간에도 여백이 필요한데, 세상에서는 그 시간을 그저 의미없는 것으로 치부하곤 했다. 시간은 무조건 꽉 채우고 무언가를 해야 보람이 남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낭비일 따름이라며.
공원은 녹색으로 대표되곤 한다. 컴퓨터를 많이 접하는 도시인의 눈에, 나무와 잔디의 녹색은 피로감을 감소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매연과 스모그로 숨쉬기 어려워지는 도시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주기도 한다면서. 어쩌면, 사람들의 사고의 측면에서 공원은 흰색이 아닐까. 회색빛 꽉 들어찬 도화지에 하얀 여백을 그려주는 곳.
공원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삶 자체가 공원으로 느껴져서 어딜가든 산책하는 기분으로 살아간다면 참 좋겠다. 아무나 와서 편하게 걷고, 편하게 보고, 듣고 느끼며 또 생각하는 공간. 잔디밭에 누워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책도 읽고, 혹은 아무것도 없이 걸어와 앉아서 세상 모든 것을 생각하기도 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