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과장님.”
밤 열시가 넘은 시간에서야 나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겨우 사무실을 떠난 참인데도 뭐 그리 필요한 것이 많은지. 업무시간에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보이지도 않던 사람이 꼭 퇴근한 다음에 연락을 하는 법이다.
지하철도 내키지 않고 버스도 북적이고. 도대체 그 시간에 왜 그리 사람이 많은지. 다행히 덥지도 춥지도 않은 9월 말의 저녁이라, 나는 편의점에서 탄산 음료를 하나 챙겨서 삼십 분 정도 걷기로 마음 먹었다.
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남색 하늘만 멀거니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름도 없고, 날씨도 좋고. 그래, 어디 놀러가지 못하니 이렇게라도 누려야지. 나는 주위를 살펴 오가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뒤 천천히 걸었다. 여전히 두 눈은 하늘에 둔 채로. 도시의 밤하늘은 영 심심한 법이다. 별들은 땅 위의 별들에 가려서 전부 자취를 감췄고, 가끔 날씨가 좋으면 환하게 웃는 달 한 조각만 덩그러니.
“그래도.......”
다들 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하면서도, 도시의 휘황찬란한 야경에는 감탄해 마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자세마저도 안타깝게 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정작 아름다운 건 하늘의 별이라며, 화려한 야경 불빛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며. 저 화려한 빛은 결국 야근의 흔적이거나, 유흥업소의 간판이거나, 매연을 숨처럼 내뿜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불빛인데 어찌 하늘의 별보다 아름다울 수 있냐며.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 흔적 하나하나가 모두 땅에 떠오른 하나의 별인 셈이다.
가로등이 환하게 켜진 도로와 그 위를 눈에 불을 켠 채 기어가는 수많은 차들. 그리고 그 안에 앉아서 힘겹게 셔츠를 풀고 야식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커다란 버스 안에 선 채로 내일을 두려워하면서 음악에 정신을 맡겨버리는 사람들. 누군가는 하루하루 다가오는 시험 날짜에 마음을 졸이면서 그 안에서 책을 넘기고, 또 누군가는 다시 오지 않을 즐거운 시간에 최선을 다해 술잔을 머리 위로 넘기고.
오늘의 수고를 훌훌 털어내는 사람들, 내일의 수고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하늘의 별을 가리고 땅에 떠오른 수많은 별들은 그들의 걱정과 열정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셈이다. 하나씩은 하찮아도 결국 찬란한 야경의 일부. 굳이 먼 미래를 보는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찬란하고 아름다운 불빛일 거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가 자기를 태워가며 빛내고 있는 거다.
인류가 발전해온 이래 밤하늘은 매일 조금씩 더 어두워졌다. 그 어두워진 밤하늘 아래 사람들로 가득찬 밤의 빛깔은 더 찬란해졌고, 다채로워졌고, 그리고 더 눈물겨워졌고, 결과적으로 더 소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