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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하늘이 당신의 하루였기를

인사말

by 봄단풍



볼 것도 많고 들을 것도 많은 요즘 세상입니다. 심심하면 핸드폰 액정을 두 번 두드리기만 하면 되고, 할 일이 있는데 심심하면 선도 없는 이어폰을 귀에 슥 꽂기만 하면 되죠. 하루가 머다하고 바뀌는 세상은 분명 즐겁고 재밌어야 하는데, 왜 마음의 갈증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을까요.


하루종일 벼르고 벼르던 나만의 시간이 오면 정작 뭘 해야할지 모릅니다. 두 시간을 쏟기에는 아까운 영화들, 이미 다섯 번째 시즌을 맞아 새로 시작하기가 겁나는 드라마들. 실사에 가깝다는 그래픽의 새로운 게임을 하자니 어지럽기만 하고, 그래서 옛날 게임을 친구들과 같이 하자니 패배의 원인이 될까봐 무섭고. 책을 읽자니 이미 작은 액정 속 요약본을 읽는데 익숙해져서 눈이 잘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잠에 들자니 귀한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 같고, 또 여전히 공허한 마음에 잠이 오지도 않고. 그렇게 어영부영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방에 불을 켜둔 채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새로운 하루를 준비하다보면 문득 자괴감이 듭니다. 어떻게하면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일상의 삶이 너무나 즐거운가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미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갖는다는 것은 사치가 되어버린 요즘입니다. 지나치는 사람마다 현실을 보라고 강요하고, 정작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고개를 숙인 채 힘겹게 발을 옮기고 있습니다. 꿈은 이미 명품 브랜드같은 단어가 됐고, 이상은 식탁 위 천장에 매달린 굴비마냥 슬쩍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하는 단어가 되어버렸죠.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던 소중한 가치들을 지키는 것은 어느새 고루한 자세가 되어버렸습니다. 다른 사람에겐 최소한의 관심만 두는 것이 미덕이 됐고, 만족할만한 결과 없이 순수한 과정에 대해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잣대가 되어버린 요즘.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나만의 시간'을 그토록 갈망하는지도 몰라요. 또 그렇게 원하던 시간을 어떻게든 귀하게 쓰고 싶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고요. 귀해진 시간 덕에 뭘 하든 만족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 아닌지, 그래서 진지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기 보다는 가볍게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눈을 돌려봤습니다. 온전히 나만 누리는 그 시간이 아니라, 하루종일 내가 걷고, 보고, 듣고, 맡고, 느끼는 그 시간으로. 담아내고 싶었던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고, 그 경치에 떠올렸던 생각들을 글로 풀어봤습니다. 때로는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때로는 익숙한 이야기들에 살포시 얹어서요. 정성스럽게 담아낸 사진과 사소한 의문, 소소한 이야기들. 이후에 이어지는 글들은 그렇습니다.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씻고 누우신 뒤에, 막상 무엇을 해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편히 침대에 누운 그 때에 핸드폰 대신 한 손으로 들어올릴 만한 가벼운 이야기들.


잠깐이나마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핸드폰을 보는 대신 책을 읽었다'는 알량한 자기 만족이어도 좋으니, 좋은 경치와 짧은 글들에 마음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의 풍경들을 보느라, 또 핸드폰과 모니터를 들여다보느라 지친 마음의 눈도 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글쓴이로서 조금 더 욕심을 내본다면,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참 대단했다고, 후회할 필요 없다고, 화려한 야경 속 움직이는 자동차 한 대의 불빛처럼 작아보여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의미없는 하루 같았지만 힘들게 버텨낸 것만으로도 당신은 대단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까지 당신이 쌓아온 시간과 삶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그래서 그 마음을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었으면.




당신의 하루가 오늘 이 하늘만큼 빛났기를,

그 빛이 이 하늘만큼 다채로웠기를.

그리고 그 길고 긴 하늘의 손톱달만큼

아주 조그마한 어려움이 스쳐지나갔다면,

그 작은 점마저 당신의 하루를 완벽하게 하는

소중한 배경이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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