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개요와 준비 과정, 여행 준비의 원칙
우리 여행은 약 한 달 동안 미국 엘에이를 출발해, 인천, 타이베이, 하노이, 방콕을 거쳐 비엔나, 파리, 뚤루즈, 런던, 브뤼셀을 지나 뉴욕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10개 도시, 8개국을 한 달 동안 도는 일정이다. 사실 이 일정은 내가 가고 싶었던 곳보다는 비행기 좌석이 있는 구간 중에서 최대한 호야가 좋아할 만한 곳으로 고른 것이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이 일정을 확정하고 티켓팅까지 하는데 3일 밤을 꼬박 새웠다.
작은 아이의 요청에 따라 첫 번째 목적지는 인천이 되었다. 이 LAX-ICN 구간은 남편과 작은 아이와 다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RTW에서 가장 어려운 구간이 태평양 구간, 유라시아 구간, 대서양 구간인데 태평양 구간과 대서양 구간은 수월하게 내가 원하는 티켓이 나왔다. 유라시아 구간이 문제였다. 한 번도 동남아를 가 본 적이 없어서 동남아를 꼭 들르고 싶었는데, 동북아에서 동남아를 연결하는 구간, 동남아에서 유럽 연결 구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보통 이 구간은 출발 350일 전에 티켓이 나오자마자 다 팔리는 구간인데 나는 300일 정도쯤에 예약에 들어갔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다.
인천에서 아시아나로 타슈켄트를 경유해 터키 항공으로 이스탄불로 가는 티켓은 있었으나, 첫 해외여행을 아에로플로트를 타고 모스크바를 다녀왔던 나지만 한여름에 타슈켄트에서 잠시 체류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략적으로 아시아에서 최대한 서쪽으로 가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방콕이 선택되었다. 이미 인천발 아시아 티켓은 동이 난 상황에서 대만의 에바 항공이 타이베이에서 방콕을 경유해 비엔나로 운항하는 티켓을 노렸는데, 아무리 해도 나오지 않아 하노이를 경유해 가는 것으로 일정을 확정했다. 호야가 워낙 베트남 음식을 좋아했기 때문에 경유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탈 것 덕후, 특히나 항공기 중 민간 수송기 덕후인 우리 아들을 위한 여행이니만큼 프랑스 툴루즈에 들러 에어버스 공장 투어를 꼭 해주고 싶었다. 이 일정이 우리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리라. 보잉 공장 투어는 아들이 5학년 초등학교 졸업 후에 시애틀에 갔을 때 이미 다녀온지라, 에어버스 공장 투어를 간다면 민간 수송기의 양대 산맥의 공장을 모두 다 투어 한 셈이니 꼭 데리고 가고 싶었다.
문제는 이 투어를 예약하려면 투어일 기준 2주 전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 말은 에어버스 공장 투어가 가능한 상황과 불가능한 상황에 나누어 일정이 달라진다는 의미이며, 유럽에서의 일정은 확정되지 않은 채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호텔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있었고, 올 해가 파리 올림픽이 있는 해라 마음은 더 급했다. 결국 나는 툴루즈를 가는 경우와 안 가는 경우 각각의 플랜을 짜 놓고, 일단 툴루즈를 간다는 전제하에 유럽 호텔을 여행 2일 전까지 취소가 가능한 Flexible Rate으로 예약해 두었다. 유로스타니 TGV니 유럽 내 이동은 비싸더라도 최종 일정이 나오면 그때 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에어버스 공장 투어는 다녀왔지만, 애초에 내가 티켓을 알아보던 때와 영어 진행 투어 일정이 달라져서 결국 비엔나와 브뤼셀을 제외한 유럽 일정은 다 다시 짜야만 했다.)
타이베이로 떠나야 하는 날자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지구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호야를 낳고 산부인과에서 퇴원해 집에 왔던 날 밤에 느꼈던 바로 그 느낌. 19년이 지났는데도 왜 그날의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지...
내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
내가 벌려놓은 일이 어떤 무게인지 출발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실감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여행을 남편도 없이 나와 호야, 둘이서만 해내야 한다니! 그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말도 못 했다. 주변에서는 세계 여행을 가니 좋겠다며 부러워했지만, 나는 정말이지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아시아에서만 일정이 확정된 상황, 유럽에서는 대충 퍼즐을 얼기설기 놓고 어느 하나 정확하게 맞추어 놓지도 못한 채로 떠나야 하는 여행이라니.. 이런 식의 여행은 평소 우리 가족이 다니던 여행 패턴은 아니었다. 항상 우리는 어디에서 묵을 것인지 정도는 다 정해놓고, 어디 가서 무엇을 볼 것인지 정도만 현장에서 아이들 상황을 보고 정한다. 더구나 여행 중에 문제가 생기면 이 문제를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온전히 내가 다 해결해야 하는 상황일 것인 분명했으니 불안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여행을 진행하며 다음 행선지의 호텔과 기차 등을 예약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이 여행을 진행하는 데 있어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호야의 주요 관심거리는 비행기, 기차, 전철, 배,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이다. 나는 그래서 최대한 비행기들은 다양한 기종으로 구성하려고 노력했고, 러기지와 짐이 제법 많았지만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과 도시 내 이동은 가급적 택시보다는 공항 철도나 전철 등 대중교통들을 이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유럽 내에서 이동도 다양한 방법으로 다니려고 계획을 짰다. 그 결과 우리는 비행기와 공항 철도뿐 아니라, TGV, Flix Bus, 선박 등을 이용했다. 아이가 꼭 타고 싶어 했던 것이 런던발, 혹은 런던착 유로스타였는데, 이 문제는 아이와 상의하여 다음에 타기로 약속했다.
이 여행의 주체는 ‘호야’ 임을 나 스스로 잊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이들과 여행을 하는 동안 매번 틀에 박혀있는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보여주고, 더 다양한 것을 경험하도록 하고 싶은 엄마의 욕심에 아이가 흥미 없을만한 곳임에도 ‘이건 봐야 한다!’며 아이를 억지로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본의 아니게 아이들을 괴롭히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가 서운해 내 마음이 상하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그 서운함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은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폭발시키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이 여행의 주체를 '호야'로 명확하게 세웠다. 이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 위주로 여정을 구성한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 가족은 일정을 빡빡하게 정해놓고 여행하는 스타일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한 곳을 최소한 3일 정도는 머물면서 느긋하게 즐기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래서 때때로 사전 준비를 해 가지 않아 여행지에서 내가 좋아할 만한 곳임에도 놓치고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아쉽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저곳에 꼭 다시 가보리라'는 다짐을 하며 평소에 그 지역에 대한 정보들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편이다. 그래서 한 번 가 본 곳을 또 가는 것도 싫어하지 않는다. 같은 곳이라도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이번 여행도 나 개인적으로 가보고 싶은 곳,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었으나, 다음을 또 올 것을 기약하며, 그때를 위해 미리 답사 온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많이 아쉽지는 않았다.
아이가 익숙한 것만 한다고 해도, 여행이란 기본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도 호야에게는 적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것을 아이에게 시도해보고 싶은 것은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마음일 게다.
나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 딱 중 세 가지만 골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발마사지, 미술관 관람, 새로운 음식
간지러움을 엄청 타는 울 호야가 방콕에서 타이 발마사지를 1시간 동안 받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미술관에 그다지 관심 없는 호야에게 미술관은 딱 한 곳만 데려가보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해서 다녀온 벨베디어 상궁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지만 타이 음식에는 큰 관심 없는 호야를 쇼핑몰 카페테리아에서 안 먹어본 음식을 골라보게 했다. 망고 빙수를 사랑하는 호야에게 타이 전통 디저트인 '애프터유 카페'에서 먹어 본 찹쌀이 깔린 망고 빙수는 호야에게 색다른 도전이었다. 이외에는 무얼 먹든 호야가 자유롭게 고르게 했다.
아이의 기호에 맞춰 여행을 구성하되, 아이가 흥미로워 보일만한 곳들 중, 아이가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을 범위에서 딱 한 발자국만 나아가 보는 것. 100% 온전히 즐기지 못해 중간에 그만두어도 큰 부담 없는 액티비티를 아이가 새롭게 시도해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의미가 충분했다.
아무리 호야가 자폐인이어도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일테면 호야는 차량 번호를 귀신같이 잘 본다. 어떨 때는 뒤에서 오는 자동차 차량 번호도 식별하고, 이미 지나갔다고 말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 중에 우버나 택시를 부르면, 많고 많은 차량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타야 할 차량을 구분해 내는 것은 아예 호야의 몫이다. 이외에도 무거운 짐을 드는 것 또한 호야의 책임으로 했고, 여행 중 지출 또한 호야가 책임지고 매일 정리하도록 했다. 공항에서 시내에 들어가는 방법을 호야 보고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이 부분은 아직 미흡한 점이 많았다. 그럼에도 비엔나 공항에서는 제법 훌륭하게 호텔까지 안내를 했다. 좀 돌아가긴 했지만^^;
아무리 발달 장애인 자식과 하는 여행이라도 내가 100%를 다 부모가 책임지고 전담하면 너무 버겁고 힘들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해외여행은 최소한 아이가 자기
짐을 꾸리고, 이 러기지를 스스로 끌고 다닐 수 있는 나이는 되어야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잘해 낼 수 있는 일을 분담하고, 이 일을 책임지고 잘했을 때 칭찬을 많이 해주니 아이의 자존감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되었고, 결론적으로 나와 관계가 더 좋아졌다.
이외에도 몇 가지 소소한 원칙들이 더 있다.
여행 기간 중에 아픈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 기본적인 상비약은 챙겼지만, 여행 기간 동안 안 아픈 것이 최선. 그래서 젊었을 때에는 여행하며 길거리 음식도 마구 사 먹었던 나지만, 아이랑 다니는 만큼 먹거리 위생에 신경을 많이 썼다. 길거리 음식의 천국인 방콕에서 잠깐 흔들리기는 했지만, 방콕이 도착지가 아닌 중간 기착점인 점, 앞으로 가야 할 곳이 구만리였던 점을 스스로 상기하며 가까스로 버텨냈다.
호야가 요청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택시를 타자고 제안하지 않기로 했다. 많은 미국 사람들은 단 5분도 걷지 않는다. 그 짧은 거리도 무조건 차를 타고 움직이는데, 그래서인지 호야는 서울에 가면 자동차보다 버스와 전철을 타고 다니고 싶어 했다. 이 점을 십분 활용하여 공항에서 호텔까지 이동하거나, 도시 내에서 이동하는 것은 가급적이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시간을 투자했으니, 당연히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당연한 말이다. 무리해서 관광지 하나를 더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여행을 해내는 것이다. 우리는 방콕에서 12시간 걸려 비엔나에 오던 날 호텔 체크인을 하고 5시간 넘게 호텔에서 잤다.
보통 나는 탑티어 호텔은 잡지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저렴한 곳 역시 피하는데, 일단 여행을 하는 데 있어 잠자리는 무척 중요하며, 잘 자고, 잘 먹을 수 있는 '깔끔한 곳'을 고르는 편이다. 하지만 런던과 뉴욕, 파리 같은 곳은 워낙 대중교통 사정이 열악하므로 웬만하면 관광지나 중심지로 잡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파리는 루브르 박물관 앞 Hotel Du Leuvre에서 묵었는데, 그 덕에 늦은 밤과 이른 아침의 루브르를 즐길 수 있었다. 이 기억은 색다른 추억으로 남는다.
내가 호야에게 간식 비용과 기념품 구입에 책정해 준 예산은 하루에 50불 선이었다. 여행을 다니다가 조정해 줄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호야는 뚤루즈에서 에어버스 380 프라모델 모형 비행기를 제외하고는 기념품은 단 한 가지도 사지 않았다. 아침은 보통 호텔에서 먹거나, 간단하게 커피숍에서 모닝 샌드위치 등으로 10불을 넘기지 않았고, 더워서인지 물만 마셨다. 중간에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 저녁도 제일 물가가 비싼 유럽에서 20유로를 넘기지 않았다. 저녁은 주로 호야가 먹고 싶어 하는 것으로 먹었기 때문에. 19살짜리가 골라봐야 얼마나 비싼 음식을 골랐겠는가. 평소에 좋아하던 베트남 쌀국수와 피자(심지어 파리에서 먹었다), 샌드위치, 파스타, 맥도널드 햄버거, 우동, 인도식 커리(이건 방콕에서..ㅠ) 를 먹었고, 런던에서는 할머니가 주신 파운드화로 길거리에서 소시지를 먹었다.
파리에서 피자와 맥도널드 햄버거라니!
맛있는 음식들이 흘러넘치는 방콕에서 타이 커리도 아니고, 인도 커리와 우동??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꾹 눌러 담았다. 그 덕에 아이와 별 마찰 없이 여행을 즐겁게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아이와 여행을 즐겁게 하려면,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없는 게 부모의 역할의 전부인 것이다. 어이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