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계기: 위로, 축하, 축복, 희망을 담다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설렌다.
물론 고기능성 자폐인인 우리 아들, 호야와 우리 가족의 설렘 포인트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보고, 만나고, 경험하게 될 것들에 설레어한다면, 우리 호야는 특정 교통수단을 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그 과정 자체를 무척 즐긴다. 그래서인지 여행 중에 탄 비행기 기종과 편명, 그리고 게이트 번호 등에 집착을 하고 이런 정보들을 꽤 오랫동안 잊지 않고 머릿속에 간직하는 편이다. 이런 아들의 성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는 '아들이 이토록 좋아하는 비행기를 원 없이 태워주고 싶다'는 사소한 동기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고, 이 직종에 근무하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이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남들과 차별되는 특출 난 직종에서 일해야 하고, 꼭 대학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부모로서 추호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 본인이 무엇을 간절하게 원하는지를 알아야 이 아이의 잠재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을 터였다. 하버드대 토드 로즈 교수는 2018년에 낸 저서 <<다크호스>>에서 비전통적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충족감'이며, 이것을 가장 중요한 성공 요소로 보았다. 호야 역시 한 인간으로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 권리가 있고, 우리 부부는 호야가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것, Something을 찾는 여정에 함께한 것이다. 이번 여행은 그 여정에 있어서 호야에게 분명히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사실 작년 여름에 호야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졸업선물로 이 여행을 주려 했었다.
RTW. Round The World. 즉 세계 여행을 작년 여름에 호야와 가고 싶었는데, 졸업을 하는 데 있어 챙겨야 할 행정적인 일들이 너무 많았었다. 게다가 졸업 후 플랜, 즉 진학 및 취업 관련해 준비해야 할 서류들과 행정 절차도 상당했고, 무엇보다 그 와중에 아들이 사고를 치는 통에 도저히 흥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졸업하고 나면 첫 생일 선물로 주는 것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년. 그 기간 동안 호야도 나름 마음고생이 많았다.
일단 그토록 좋아하던 High Tech High 친구들과 헤어졌고, 그 친구들은 자신의 꿈을 향해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그로 인해 호야는 상당히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친구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동안, 호야는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니 말이다. 졸업을 해도 본인은 딱히 변한 것이 없으니 친구들도 그럴 것이라 짐작했던 호야 입장에서, 더구나 남의 입장에 대해 미루어 짐작하는 스킬이 서툰 고기능성 자폐인인 울 아이의 입장에서 많이 서운하고, 속상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그 시간을 잘 견디며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Continuing Education에서 성실하게 수업을 들으며 학점을 따내었으며, 씨월드에서도 Merchandise Team Ambassador로서 자기 일을 사랑하며 사회인으로서도 제 몫을 당당히 해 내었다.
더군다나 5월 말에 Sea World에서 호야의 취업 1주년을 축하한다며 카드를 보내주었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1주년일지도 모르겠으나,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특별한 날이었다. 킨더에 들어가면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호야는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왔다. 그 ‘누군가’는 주로 선생님과 친구들이었고, 특히나 통합반 교사 선생님은 늘 호야가 수업에 따라갈 수 있도록 전적으로 도와주는 고마운 분이셨다.
호야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Sea World에 취업하면서부터는 직장 동료들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전담해 도와주는 이 없이 홀로 직업 현장에서 버텨냈다. 일반적으로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는 호야 같은 아이들이 취업을 하면 옆에서 도와주는 ‘잡 코치 Job Coach’를 파견해 주는데, 씨월드는 잡 코치의 출입을 정책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호야는 태어나 처음으로 ‘타인의 도움 없이' 일을 하고, 돈을 벌었는데 얼마 못 버틸 줄 알았던 아이가 자그마치 1년을 버텨낸 것이다. 우리로서는 호야의 잠재력을 확인한 소중한 날이다. 호야는 축하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미국에서 여자 아이들의 16번째 생일은 'Sweet 16‘이라 하여 성대하게 잔치를 해 주는데, 미국에서 이 '16'이라는 나이가 숫자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16살이 지나면 준 성인으로 합법적으로 노동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을 할 수 있다. 우리 딸도 친구를 중에 자기 차를 물고 학교에 오는 친구들이 점점 늘고 있다며,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한 15세 반일 때부터 면허를 따게 해 달라고 우리 부부를 조르고 있다. 지금까지 안된다고 버텨오고는 있는데, 아마 조 민간 면허를 따게 해 주긴 해야 할 듯하다.
16번째 생일이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데다 작은 아이 친구 대부분인 멕시코 출신인 아이들은 미국 아이들과 달리 15번째 생일을 ‘낀시네라 Quinceanera’라고 부르며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성대하게 댄스파티를 한다. 여러 번 이 파티에 초대받은 적이 있는 작은아이에게 일찍부터 아이에게 16번째 생일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작은 아이는 그때마다 같은 대답을 했다
“한국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작은 아이에게도 RTW에 함께 가자고 여러 번 권유했지만, 자기는 이번 여행은 한국에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사양했다. 결국 남편과 작은 아이는 서울 여행 후 미국으로 바로 돌아오고, 나와 호야만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되돌려 생각해 보면 지금이 호야의 지난 1년 동안 느꼈을 외로움을 위로해 주고 그 성과를 함께 축하해 주고, 아이들 둘 모두가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길을 함께 떠나기에는 최고의 시기다 싶다. 작년 9월에 3일 밤을 새 가며 세계 여행 티켓을 끊어두기를 진짜 잘했다. 나님 칭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