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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un 26. 2024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다

사랑하는 선생님들께


올해 여름비가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두서너 줄기의 빗발이 우둑우둑 창문을 두드리더니 이내 세차게 쏟아집니다. 비가 오니 커피 생각이 나더군요.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물을 끓이고, 곱게 갈린 원두를 드리퍼에 붓고, 끓인 물은 동 포트에 붓습니다. 물과 원두가 적절히 조화로워지며 향긋한 내음을 풍깁니다. 커피의 향미를 즐기기 위해서는 원두 분쇄 굵기부터, 커피 가루의 양, 물양, 추출 온도, 추출 시간, 추출량 등 순간순간에 마음을 기울이고 그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한순간이라도 마음이 흩어지면 커피 향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여름비 덕분에 내린 커피는 분주한 마음을 잠시 쉬고, 지금 여기에 머물게 합니다.



지금 여기에 머문다는 것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먹고, 걷는 나를 알아차린다는 것입니다. 나는 매 순간 일어나고 변화합니다. 나는 지금 여기의 인연 속에서 생겨나고, 인연이 사라지면 마음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인연 속에 새로운 내가 생겨납니다. 때마다 나의 역할은, 인연을 통해 생기는 나와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돌보는 것이지요.


알아차리고 돌본다는 것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아는 것입니다. 기쁨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온전히 누리되 흘러감을 아는 것. 슬픔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온전히 슬퍼하되 인연 따라 변화할 수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알아차리면, 마음을 돌봐줄 수 있습니다. 마음에 귀 기울이고, 무엇이 필요한지 가만히 지켜보세요. 위로가 필요하다면 스스로 위로해 주고, 기쁨이 필요하다면 스스로 기쁨을 선물해 주면 됩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는 그것과 함께 머무는 ‘소중하고 귀한’ 내가 있습니다. 어떤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내가 있습니다. 나는 어떤 마음도 분별하지 않습니다.


나는 무엇이든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유연해지고 관대해질 수 있어요. 그러면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라는 진실을 알게 됩니다. 괴로울 때도 나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지금도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나를 돌보고 있다는 진실.


마음을 알아차리는 곳에는 보물이 있습니다. 기쁨 속에서도 슬픔 속에서도 변치 않는 ‘소중하고 귀한 존재’. 나라는 보물이 있어요. 그 보물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추고 가만히 나를 지켜보세요. 그곳에 내가 오롯이 존재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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