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선생님들께
‘보드라운 잎사귀 사이로’라는 허브차를 받았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상상하며 만들었다는 차는, 몸 안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연둣빛 숲을 그려줍니다. 눈을 감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나뭇잎과 햇살. 그러한 기억과 경험이 어우러져 새로운 기억을 만듭니다.
첫 차는 숲에서 마시고 싶어 가벼운 산책을 나섭니다. 준비물은 작은 찻잔과 다관, 찻잎 한 스푼, 따뜻하게 끓인 물이면 충분하지요.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잠시 숨을 돌립니다. 녹음 사이로 빛과 그림자가 함께 머무는 것을 바라보며 첫 차를 우립니다. 입안 가득 차향이 고일 때마다 연둣빛 눈이 고이 쌓이는 풍경을 그려봅니다.
눈처럼 보드라운 잎사귀가 마음을 데워 가는 동안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풀밭에 바람이 함께하듯 상대를 대상화하지 않으면, 풀과 바람은 다투지 않고 어우러질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보는 풍경은 내면의 반영입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과 조율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것이 무엇이든 온전히 기쁘게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힘을 조금 빼고 살아가 보면 어떨까요? 삶에서 힘을 빼면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합니다. 인위적인 힘을 비우면, 내가 만든 나도 비워집니다. 내가 비워지면, 매 순간 함께하는 인연을 내밀하게 마주하게 되지요. 분별이나 판단하려는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볼 때 우리는 그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매 순간 나와 함께하는 인연과 조화로울 수 있다면, 비워진 힘은 평온으로 채워질 테고요.
저는 지금 나무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초여름 한낮, 시원한 바람, 따뜻한 차, 플라타너스, 후투티, 보드라운 잎사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분별하지 않고 사랑 안에 함께 머물러 있지요.
마음공부의 목적은, 괴로움을 없애는 게 아니라 괴로움을 다루는 방식을 배우는 데 있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괴로움과 나의 관계를 조율하며 다시 삶으로 나아가게 하지요. 우리는 괴로움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저 적당히 힘을 빼고, 그것이 내게 온 이유를 천천히 물어보기만 하면 됩니다.
평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