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열리는 천변의 도깨비 시장에 나가보니 각양각색의 콩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완두콩, 강낭콩이 콩깍지 채 보이는데 철이 이르다 보니 예전에 비해 거의 한 달은 빠른 것 아닌가 싶다. 작두콩, 호랑이콩, 강낭콩, 완두콩, 돔부콩, 렌틸콩, 울타리콩, 병아리콩 등등 새벽에 따와 갓 깐 콩에서부터 때로는 수입산까지 모양도 빛깔도 다양하다. 좌판의 상인들이 앉은자리에서 연신 콩 꼬투리를 까면서 담아놓은 작은 보시기의 풋콩을 보면 싱싱한 여름을 머금은 것 같아 귀물스럽다. 종류별로 욕심껏 사서 냉동실에 쟁여 넣다 보면 여름에 산 콩을 겨울까지 먹기도 한다.
내게 풋콩은 어릴 적 여름의 기억과 맞닿아 있다. 여름밤은 짧아서 새벽잠이 꿀보다 더 달고 아쉽던 초등학교 적, 그래도 엄마가 깨우기 전에 일어나야했다. 조금 늦게 일어나면 아침 마당과 골목은 할아버지께서 이미 다 쓸어놓으셨으니 할머니 심부름으로 아침밥에 놓을 콩을 따곤 했다. 해는 아직 밝게 떠오르기 전, 눈을 비비며 동생과 함께 울안의 텃밭에 나간다. 선선한 새벽 공기, 여름 파자마 아래 드러난 발목에 콩잎에 맺힌 찬 이슬이 닿아 선득거려 싫었다. 시린 발목을 문질러가며 초여름엔 덩굴을 따라 완두콩을 땄고, 완두콩이 시들면 바로 강낭콩 철이었다. 소쿠리를 들고 앉아서 이슬 맺힌 콩잎을 젖히고 아래를 살펴서 실하게 여문 꼬투리를 찾았다. 연보랏빛 콩꽃은 은은하니 아름다웠다. 잘 여문 콩으로 골라 딴 뒤 마루에 앉아 콩을 깐다. 같은 색의 완두콩보다는 색이 다양한 강낭콩을 까는 것이 더 재미있다. 동생이랑 강낭콩을 까다 보면 붉은 콩, 흰 바탕에 분홍 줄무늬, 진보라색 등등 꼬투리마다 다른 색의 윤기 나는 통통한 콩들이 나올 때마다 너무 예뻐 경이로웠다.
그 콩을 놓아 막 지은 고소한 밥을 먹으면 이슬을 걷으며 아침 해가 떠올랐다. 나팔꽃 분꽃이 활짝 피어있고 아직 지지 않은 노란 달맞이꽃도 뒤란에 환하던 아침나절의 풍경. 지금도 시장 좌판에서 싱싱한 풋콩을 만나면 어렸을 적의 아침이 연상되어 마냥 반갑다.
다시 여름이 오고있다. 이따가 메주콩이나 쥐눈이콩을 좀 사다가 콩국을 준비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