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파트가 뭔지 들어본 적도 없던 때. 도시에서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이어진 주택에 살거나 아니면 툭 트인 들을 마주한 마을 마당을 지닌 집에 살거나, 뭐 사는 방식은 거기서 거기가 아니었나 싶다. 비 오는 날의 풍경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때는 특별히 방송의 일기예보가 없더라도 대충 노인네들의 짐작이 맞아 들었다.
"이 바람은 비를 잔뜩 머금었네. 곧 비가 오려나보다." 혹은 "요 며칠 새가 낮게 날고, 내 온몸이 천근만근인 것을 보니 곧 비 소식이 있으려나보다."라는 식으로.
아니나 다를까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쏴아~ 소낙비가 올 징후가 보이면 온 집안 식구가 죄다 비상이다.
"소나기다!'
하는 소리에 후드득 후다닥 집안 식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혹시라도 엄마로부터 ‘비 오면 이러이러 하라.’라고 당부를 들었는데 깜빡 잠을 잤거나 딴 일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비가 막 쏟아질 즈음에야 알았을 때는 등줄기가 훅 하니 달아오를 일이었다. 장독에 비가 들면 큰일이었으니 말이다.
제일 먼저 열어둔 장독 뚜껑을 닫아야 했고, 바지랑대에 바쳐둔 빨랫줄의 빨래를 걷어 들였다. 혹시나 채반에 널어 둔 말릴 것이 장독대에 놓여 있으면 그것도 얼른 들여 둬야 했다. 때로는 마당에 펴둔 평상을 세워서 토방 처마 밑으로 올려 비 맞는 것을 막아야 했다. 시골에서는 아마 밖에 메어둔 염소나 소를 데려오기도 했을 것이다.
여름 장마에 대비해서 홈통 청소나 수채 정비는 이미 했을 것이지만 그래도 비가 오면 처마를 둘러친 채양의 함석 홈통을 타고 빗물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집에 어른이 안 계실 때면 집 둘레를 한 바퀴 돌며 혹시 뭐 잘못된 곳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우산을 받았어도 세차게 오는 비는 튀어서 얇은 여름옷을 죄다 적시고, 이왕 옷도 버린 김에 아예 죽죽 물을 끼얹어 씻고 나서 고슬고슬한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마루에서 바라보는 빗줄기. 어느새 찌는 듯 한 더위는 한소끔 꺾이고 소나기는 마냥 시원하고 개운했다. 마당 화단의 족두리 꽃이나 봉선화, 한련화, 한창 덩굴을 뻗은 수세미나 오이 덩굴이 비를 맞느라 숙이고 휩쓸리는 모습, 어느새 쳐놓았는지 왕거미 녀석의 커다란 거미줄에 빗방울이 달리는 것을 보는 것도 여름 비 오는 날의 익숙한 풍경이었다.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보니 관심도 없다. 뚜껑을 덮을 장독도 없고 내가 신경 써야 할 아무런 일이 없다. 있다면 열어둔 베란다 문을 비가 들이칠까 봐 닫는 일 정도. 아파트를 손보거나 갈무리할 일이 있다면 다달이 내는 관리비를 가지고 관리소에서 알아서 할 일이니 말이다.
낙숫물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층 아파트에서는 그저 뿌연 유리 너머로 내리치는 비의 허리께를 보게 되는 것일까. 기다랗게 그으며 떨어지는 물의 잔 기둥을.
땅과 유리된 삶의 모습은 자연 그리고 이웃과도 그만큼 멀어지고 또 감성도 그만큼 닫히는 게 아닌가 싶다.
따끈한 전과 어울리는 살가운 식구나 친구들과의 이야기 대신에 난 온종일 비 오는 오늘, 혼자서 유리 너머 빗줄기를 바라보며 불면의 걱정도 밀치고 커피를 몇 잔째 마시고 있다. 지하나 닫힌 공간이 아닌 커다란 통유리로 내가 좋아하는 비를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아야 할까 보다.
비는 여전히 죽죽 내리고 내 마음은 여기저기 시간대를 오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