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온통 안개로 덮여있다. 시야가 20m나 나올까 싶은데 앞 산도 나무 몇 그루만 희미한 실루엣으로 보일 뿐 진한 운무로 전체 풍경을 가늠할 수가 없다.
나는 창 앞에 우두커니 서서 이 산 너머는 전부가 너른 바다라고 상상해본다. 툭 트인 바다로 둘러싸인 섬의 언덕에 의지하고 있는 집에서 내가 아침에 깨어난 것이다. 전에 갔던 어느 여행지처럼 앞의 산을 내려가면 바다로 통하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보기로 한다.
당분간 이 안개는 지속될 것이다. 난 하릴없이 넉넉한 시간을 지녔으니 차 한잔을 우려 이 느긋한 풍경에 젖어들 수 있는 날이다.
아주 오래전에도 이렇게 진한 안개를 본 일이 있다. 친구들과 근교 찻집에서 밤늦게 수다를 떨다 나오니 온 천지가 농무로 덮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당시에는 차도 거의 다니지 않던 길이었고 익숙한 곳이라 서로를 의지해서 더듬더듬 안갯속을 헤쳐 30분 남짓 큰길까지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온 적이 있다. 그야말로 몽환적인 밤이었다.
그때 그 친구들 역시 졸업 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에 나와 나름 안개를 헤쳐나가며 살고 있을 것이다. 앞이 흐려 딱 절벽이구나 싶어 절망적이던 곳도 막상 도달해 보면 조붓한 오솔길이 평탄하게 나 있는 경우도 있고 탄탄대로라 생각했던 곳이 막상 가보면 신기루에 지나지 않은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엊그제는 25년 전에 우리 손으로 지은 교외의 집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나왔다. 우리 둘만 살기에는 너무 큰 집이고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서 시내에 다시 들어와 사는 동안 세컨드 하우스로 쓰다가 그런 집에 필요한 다른 이에게 넘겨주게 된 것이다. 그 집을 지으면서 벽난로를 설치했었다. 해바다 트럭으로 참나무를 들여 겨울 채비를 하곤 했다. 평생 죽을 때까지 겨울이면 그 난로가에서 타닥타닥 타오르는 참나무 불길을 바라보며 온 가족과 더불어 안락하게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창고에는 마른 참나무가 그득하다. 아쉽고 섭섭한 마음도 한가득이다. 그러나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나아갈 때와 머물 때가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오늘은 안개가 제법 늦게까지 걷히지 않고 온종일 흐리다. 아직 본격적인 추위는 오지 않았지만 음울한 겨울 기분이 난다. 오후 늦게라도 해가 나면 이 안개도 걷힐 것이다. 그때까지 난 책을 보며 실내에서 머물 것이다.
그때까지 세상이 끼어들 틈 없이 내 공상에 갇혀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이 계절에 내가 누릴 수 있는 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