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계리사 공부를 같이했던 분들이랑 점심을 먹었다.
학교 졸업하면 더 이상 공부는 안 할 줄 알았다. 시험도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직장인을 위한 공부와 시험이 따로 있었다. 바로 자격증의 세계였다!
무슨 자격증이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입사하자마자 ‘우리는 보험사니까 보험심사역 자격증을 따거라’라며 회사에서 다짜고짜 공부시켰다. 영문도 모른 채 공부를 시작했는데, 주위의 입사 동기들도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와 이거 지금 열심히 해야 하나 보다’ 하고 어영부영 공부했다.
입사와 동시에 자격증의 세계로 발을 들여버린 탓에, ‘자격증을 따면 인정을 받나 보다’라는 다소 세상 물정 모르는(?) 추측을 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보험이나 재무와 관련된 자격증을 따면 취득 축하금까지 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몇몇 비교적 희소한 자격증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혹은 무기한으로 월급에 얼마를 자격 수당으로 얹어 준다니, 이만큼 확실한 재테크도 없었다.
그렇게 CPCU를 따고, CFA를 따고 하다가 미계리사에 손을 댔다. ‘한국 계리사는 너무 빡세 보인다’라는 이유로 비교적 만만해 보이는 쪽에 손을 댄 셈이었지만, 아뿔싸! 여기는 내 영역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학창 시절에 나는 수학을 좋아했지만 수학은 나를 싫어했고, 그래서 문과의 길을 걸어왔건만 그새 과거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미계리사 스쿨링 과정(회사에서 며칠간 연수원에 가둬놓고 자습을 시켰다)을 들어갔지만, 쉬운 과목 몇 개만 붙고 그 뒤로는 연전연패였다.
언젠가는 함께 스쿨링을 하던 4명끼리 친해져서 쉬는 시간마다 연수원 라운지에서 젠가를 가지고 놀았다. 결과가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그때도 떨어졌던 것 같다. 아마 그 뒤로 미계리사에서 손을 뗐던가? 보통 뭐든지 애매하게 하다 남기는 일이 정말 없는 편인데, 미계리사 때만큼은 웬일로 현명하고 깔끔하게 매몰 비용을 손절했다.
아무튼 그때의 젠가 조합으로 몇 년 만에 만나서 점심을 먹었고, 덕분에 오랜만에 자격증 생각이 났다.
이제 곧 직장인 10년 차인데, 과거를 돌이켜보면 자격증은 크게 직장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 같다. CPCU를 땄다고 해서 언더라이팅 업무에 배치되지도 않고, CFA를 땄다고 해서 재무 업무를 맡지도 않고, 영어 급수를 땄다고 해서 해외 업무를 받지도 않았으며, 클라우드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직무가 바뀌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격증 공부를 안 했다고 해도, 그 시간을 뭔가 더 생산적으로 채우지는 않았을 것 같기는 하다. 아마 집에만 누워 있지 않았을까? 내 성격에 맛집 투어나 핫플 탐색을 부지런히 다니지도 않았을 테고.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른들이 옛날부터 ‘사짜 들어가는 거 아니면 자격증 딸 필요 없다’라고 하시던 이유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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