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만 훌쩍 큰 사람

by 구의동 에밀리

회사에 간혹 동갑이 있다.

물론 ‘간혹’ 있다. 왜냐하면 회사는 학교랑 다르게 정말 다양한 연령층이 다니는 조직이니까. 잘하면 어떤 세대는 다른 세대를 ‘낳았을’ 수도 있을 정도로 나이 차이가 크게 난다.

그렇게 귀한 동갑내기 동료 한 명과 점심을 먹은 날이었다.

“뭐 먹을까?”

“중국집 갈까?”

“좋아! 하지만 난 일일향보다 자원방래를 선호하지.”

“그럼 자원방래 가자!”

마침 짜장면이 먹고 싶던 차에 희소식이었다. 임신성 소화불량에 시달리느라 머리로는 순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웬일인지 그 기름진 짜장면을 먹고 싶었다. 핑계가 필요했는데 딱이었다.

점심을 먹으면서는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다. 동갑이라서 그런지 공감할 수 있는 대화거리가 많았다. 일이 힘든 것보다는 사람이 힘든 게 훨씬 스트레스라는 말에도 공감이 갔고, 이제는 한 회사를 너무 오래 다녔더니 ‘다른 회사 가면 내가 적응을 잘할까?’ 싶은 두려움이 든다는 말에도 서로 격공했다.

“요즘에는 사옥 이전하기 전 시기를 겪었느냐 아니냐를 가지고서도 세대 차이를 가려내더라구.”

“아, 맞아! 조직 이름들도 하도 바뀌어서, 가끔은 나 예전 이름으로 부른다? 그러면 신입 분들은 못 알아듣고, 옆에 있는 사람이 설명해 줘. ‘그건 옛날에 쓰이던 명칭 중 하나고, 그 명칭을 쓰는 사람의 특징은 고인물이다’라고.”

“풉, 나도 그러는데. 부서 이름도 자꾸 바뀌잖아. 그래서 때로는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도 헷갈린다니까? 그룹장, 파트장, 부서장, …….”

“그러고 보니 이 회사를 이렇게 오래 다녔는데, 아직도 내가 막내급이야.”

“정말?”

“올해에 신입 한 분 들어오시기 전까지는 완전 막내였어.”

“하긴, 워낙에 신입은 안 뽑으니까……. 다니던 사람들은 계속 다니고. 나는 그래서 요즘에 가끔 걱정이 돼. 솔직히 30대 초반이면 다른 회사에서는 팀장을 달아서 관리자가 되기도 하고 하는데,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나도 그래. 미성숙한 상태로 계속 가는 것 같달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대로 지내고 싶기도 해. 직급 올라 봐야 책임만 더 지워지지.”

“맞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만큼 잘 해낼 자신도 없고. 호칭이라도 모두 통일됐으면 좋겠다. 호칭 뒤에 좀 숨게.” (이때까지만 해도 전사적으로 호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아서, 대리나 과장 같은 느낌의 수직적인 호칭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이만한 연차가 되면 완전 나이 제대로 많은 어른이라고 생각했거든? 막 다들 이미 육아휴직도 다녀오고 그런 어른 말야. 근데 이제 내가 그 연차인데 별 것 없어 보여.”

어떤 사람은 1~2년이 멀다 하고 이직을 하던데, 한 회사만 오래 다녀본 입장에서는 그런 삶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역시 모 아니면 도 같은 걸까? 엄청 다재다능하거나, 아니면 어중이떠중이가 되어 버리거나.

나는 어쩌면, 다재다능해질 수도 있었지만 어중이떠중이가 될 일이 두려워서 그만 눌러앉아 버린 걸까? 아니면 사실 원래 삶의 나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결국 ‘아,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리 방황하지 않는 건데’ 하고 환생해서 결국 한자리에 정착한 걸까?사람은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두기 마련이라는데. 무슨 길을 가든, 멋진 길을 가고 후회가 덜 남을 길을 택하고 싶은 것도 모두 같은 마음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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