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 내에서 호칭이 하나로 통일되었지만, 여전히 ‘선배’라는 호칭이 남아 있다. (참고로 글을 다듬는 지금은 본부가 아니라 아예 전사적으로 호칭이 통일되었다.)
물론 경력직 분들이 오시면서 선후배 개념은 점차 희미해져 가는 것 같다. 이러나저러나 일 잘하는 사람이 최고이고, 나이가 많든 적든 친해지기 전에는 기본적으로 서로 ‘프로님’이라면서 존대한다. 예전 같았으면 사원-대리-과장-차장 하는 식으로 나래비(?)가 세워지고 사번을 하나하나 기억했을 텐데, 지금은 좀 달라진 것 같다.
그렇게 직급을 떼고 호칭 통일이 된 지가 벌써 몇 년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따금 ‘선배님’ 하는 호칭이 귀에 들려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혼자서 움찔한다. 나만 진짜로 계급장 떼고 살고 있었나, 나도 눈치 챙겨서 이제부터라도 ‘선배님’ 하고 불러야 하나, 그런 생각이 잠깐 스쳐 간다. 하지만 과장님을 차장님이라고 부르거나, 때로는 과장님을 대리님이라고 낮춰 불러버리는 호칭 실수를 곧잘 하는 자신을 잘 알기에……. 생각만 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때로는 ‘후배님’이라는 호칭도 들릴 때가 있다. 아주 가끔 들리는 단어지만, 그래서 더 낯설고 귀가 쫑긋해지는 말이다. 애초에 회사에서는 윗사람을 공경할 목적으로 ‘선배’라는 단어에 ‘님’자를 붙이느라 ‘선배님’ 하는 말이 쓰이는 것 같은데, 아랫사람을 ‘□□ 사원’, ‘○○ 대리’하는 식이 아니라 ‘후배+님’으로 부른다니?
생소한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이보다 더 애정 어린 표현도 없는 것 같았다. 솔직히 부하 직원들이야 고과권자, 인사권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윗사람에게 존칭을 쓸 이유는 충분했다. 반면에 직급이 비교적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을 보듬어주고 챙겨주는 일은 인간적인 애정과 관심이 없이는 어려운 행동 같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떠올려 보면 ‘악덕 상사’ 캐릭터가 차고 넘친다. 아랫사람의 공을 모조리 가로채 가는 사람, 괴롭히기는 엄청나게 괴롭혀 놓고 아무것도 챙겨주지 않는 사람, 남들 안 보는 데에서 갈구는 사람 등등. 그래서인지 현실 세계에서 진심으로 후배를 위하는 마음을 가진 ‘선배’를 보게 되면 내심 놀라게 된다.
아무리 사회인이 되었다고는 해도, 배워야 할 것들이 한참 많다. 예를 들어 나는 아직 리더 자리를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으니까, 상사들로부터 배워야 할 게 많다. 어쩌면 이미 누군가의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들마저도 아직 다른 누군가로부터 배울 점이 여전히 많을지도 모른다. 부장님은 상무님으로부터, 상무님은 전무님으로부터, 전무님은 사장님으로부터…….
인복에는 아랫사람 복과 윗사람 복이 있다는데, 나는 아직은 윗사람 복이 조금 더 탐난다. 내가 아직 갖추지 못한 능력이 눈에 많이 보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기획력, 결단력, 통솔력 같은 스킬들은 관련 서적을 읽는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 나보다 경험 많은 누군가가 직접 선보이는 모습을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흉내도 내보고 해야 길러지는 능력인 것 같다. 미숙한 상태에서 나이만 훌떡 먹는 게 아니라, 좋은 선배들을 보고 배우면서 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나중에는 그런 좋은 선배가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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