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장님

by 구의동 에밀리

연말연시 인사철을 맞아, 새로운 사장님이 오셨다.

“10시 좀 넘어서 우리 층으로 인사 오실 예정입니다. 바쁜 일 없으시면 자리 앉아 주세요~”

공지 사항을 듣고, 딱히 회의도 없던 차여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맨 꼭대기부터 한 층 한 층 내려오시면서 인사를 다니고 계신 것 같았다.

예전에 들었던 얘기인데, 은행은 부문장이나 본부장처럼 높은 임원이 새로 부임하면 그 방 앞에 직원들이 줄을 선다고 한다. 그러고는 차례차례 인사하러 들어갔다 나온다고 하는데, 요즘은 좀 다르려나?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는 사장님이 직접 돌아다니시는 쪽의 문화가 훨씬 선진적이려나 싶었다.

“사장님 오셨습니다.”

저편에서 누군가가 외치자,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쭉 빼고 기다렸다. 왠지 모르게 <동물의 왕국>에서 보던 미어캣들이 떠올랐다.

그때, 근처 자리의 동료가 소곤거렸다.

“랜덤으로 ‘다짐’을 물어보신대.”

다짐? 회사 다니면서 해본 다짐이라고는 ‘오늘도 잘 버텨보자’ 정도가 고작인데. 게다가 나는 한 달 후면 출산휴가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렇다면 ‘순산하겠습니다’? 아니, 아니야……. 이 많은 사람 중에서 내가 걸릴 확률은 높지 않지만, 그래도 진짜로 물어보시면 어떡하지.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다짐을 물어보지 않으면서 천천히 행차(?)하실 뿐이었다. 저쪽에서 한 명이 걸리면 이쪽에서도 한 명은 걸리겠거니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넘어가나 싶었는데, 눈이 딱 마주쳤다.

“어? 자네…….”

완전 옛날에 본부가 같아서 몇 번 뵈었던 게 전부였는데, 기억하고 계셨나 보다. 하지만 그게 벌써 몇 년 전인 데다가 그때도 이미 직급 차이가 너무 컸었다. 그런데도 조무래기 직원을 기억하고 계실 줄이야. 아니, 역시 이 정도는 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

“아, 네! 여기 와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오오. 무슨 일하고 있나?”

그렇게 뜻밖의 스몰토크와 악수를 했다. 얼떨떨했다.

그런데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사장님을 또 마주쳤다. 아니, ‘대기업 사장’이라는 포지션이 원래 이렇게 흔한 캐릭터인가? 회사에 한 명밖에 없는데? 현대물 소설에서도 하루에 몇 번씩 사장님을 자주 마주치지는 않아…….

“그래, 요즘에는 출퇴근 시간이 좀 플렉서블한 편인가?”

“아, 네. 그런데 저는 또 임산부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그렇게 또 스몰토크를 하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아무도 안 시켰는데도,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를 자꾸만 혼자 돌이켜봤다. 쓸데없는 헛소리, 안 하느니만 못한 농담 같은 말들은 안 했겠지?스티브 잡스는 엘리베이터 피치가 형편없는 직원은 바로 해고해 버렸다는데. 사장님이 스티브 잡스가 아니셔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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