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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an 07. 2019

낮잠 꾸러기의 최후

중국에 있을 때의 일이예요. 점심을 먹고 나오니 온 거리가 쥐 죽은 듯 조용한 게 아니겠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오수午睡, 낮잠 시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참 낯선 경험이었어요. 밥 먹고 누우면 소가 된다는데,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다니요. 처음에는 게으른 사람들이라며 손가락질하곤 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낮잠시간을 자는 나라가 적지 않다고 해요. 건강에도 좋고, 머리를 맑게 해서 일의 능률이 더 오른다고 합니다. 


논어에는 이 낮잠 때문에 호되게 야단을 맞은 제자가 있어요. 바로 재아라는 제자입니다. 그 장면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지요.


재아가 낮잠을 잤다. 이를 두고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만든 담장은 손질할 수도 없다.
 내가 재아에게 무슨 말을 할까."
5-10

논어에 등장하는 제자 치고 공자에게 칭찬을 들은 제자는 드뭅니다. 꾸중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러나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들은 경우는 거의 없답니다. 썩은 나무를 본 적이 있는지요. 썩은 나무는 쉽게 바스러집니다. 이런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겠지요. 칼을 대자마자 부서질 테니까요. 썩은 흙으로 만든 담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자에게 꾸중을 들은 제자는 많지만 재아만큼 큰 실망을 안긴 제자는 없었습니다. 


이 비유를 풀이하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도무지 가망이 없구나." 그래서 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해요. 꾸중을 하더라도 고치지 않을 거라는 뜻입니다. 어이쿠, 낮잠을 잤다고 이렇게까지 말하다니! 아무리 배움을 강조하더라도 너무 심한 건 아닐까요? 대관절 재아에게 무슨 문제가 있기에 이렇게 된 것인지, 이어지는 공자의 말을 더 들어봅시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렇게 행동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본다.
바로 재아 때문에 바뀐 것이지."

여기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법합니다. 낮잠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약속이 문제였을 거예요. 재아는 공자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요? 자신은 늘 열심히 공부한다고, 다른 제자들이 모두 쉬는 시간에도 꾸준히 공부한다고 했을지 모릅니다. 아니면 낮잠 때문에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을 수도 있어요. 낮잠을 자지 않겠다고 약속했을지도 모릅니다. 한편 선생님과 중요한 약속을 잡아두고는 낮잠을 잤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어쨌든 신뢰를 깨뜨릴만한 일을 반복적으로 저지른 것은 분명해 보여요. 그러니 공자가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이지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재아는 참 대단한 일을 벌인 것입니다. 공자 선생님의 태도를 바꿔버렸으니까요. 재아 때문에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공자의 말을 바꾸면 이렇게 할 수 있겠어요. "너 때문에 이제는 남이 무어라 말해도 그대로 믿지 못하겠다." 선생님의 신뢰를 저버린 제자, 재아의 문제는 '말'이었어요.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디 이 말은 '꾸민 말과 표정'이라는 뜻이예요. 이에 대해 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말과 표정을 꾸미는 사람 치고 제대로 된 사람은 드물다!
1-3

공자는 대체로 말 잘하는 사람을 싫어했어요.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말과 행동이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예요. 예나 지금이나 행동보다 말이 앞서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공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답니다. '말은 천천히, 행동은 재빨리(4-24)' 겉모습과는 영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지요.


한자를 보면 믿음(信)이란 말(言)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사람(人)과 말(言)이 함께 있는 것이 바로 믿음(信)입니다. 말대로 행동하는 것, 말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출발점입니다. 말과 행동이, 말과 삶이, 말과 사람이 따로 있을 때 불신不信이 싹틉니다. 그럼 어쩔 수 없지요. 공자가 말한 것처럼 지켜보고 따져보는 수밖에.


공자는 생전에 10명의 제자를 꼽아 언급한 적이 있었어요.(*) 재아는 자공과 함께 말재주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답니다. 자공도 꽤 빼어난 말솜씨를 자랑하는 인물이었지만 재아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자공을 제치고 재아가 먼저 언급되니 말입니다. 그러나 자공보다 재아가 더 큰 꾸중을 들은 것은 그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자공은 공자와의 대화 속에서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깨우치곤 했습니다. 그러나 재아에게는 그런 면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깨우침을 위한 질문이라기보다는 질문을 위한 질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삼년상을 두고 벌어진 재아와 공자의 대화를 살펴봅시다.


“삼년상은 너무 길지 않을까요?
군주가 삼 년 동안 나라를 돌보지 않으면 나라가 엉망이 됩니다.
일 년이면 묵은 곡식을 다 먹어치우고 새 곡식이 나지 않습니까?
일 년이면 충분합니다."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맛난 음식을 먹고 비단옷을 몸에 걸치는 것이 너는 편하더냐?"

"편합니다."

"네가 편하거든 그렇게 하거라!"
17-21

재아와 공자의 대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재아의 질문이 합당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삼년상을 치르다니요. 재아가 이야기한 것처럼 일 년간 상을 치르는 것도 무리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핵심은 다른데 있었어요. 길이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공자는 어떻게 하는 게 마음에 편안한지를 묻고 있어요.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하는 게 관심이 아니었답니다. 


재아는 공자의 질문의 의도를 전혀 생각하고 있지 못합니다. 공자가 원한 것은 삼년상의 의미를 생각해보라는 뜻이었어요. 그러나 재아는 간단한 대답합니다. 재아의 대답에서는 일말의 고민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재아가 의기양양하게 돌아간 뒤 공자는 이렇게 한탄했다고 해요. 


"못난 녀석! 태어난 뒤 삼 년이 지나야 자식이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는 법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삼년상을 지키는 것이지.
재아는 삼 년 동안 부모의 사랑을 받기나 했을까?"

이밖에도 재아는 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나 늘 비슷한 상황이 벌어져요. 공자로부터 큰 실망이 섞인 대답을 들을 뿐입니다. 전혀 새로운 깨우침을 얻지 못하지요. 질문에서조차 자신을 내세우기 급급했던 까닭입니다.


이 제자의 가장 큰 불행은 논어에 그의 행적이 매우 적에 남아있다는 점이예요. 공자가 손꼽아 칭찬한 제자 치고 너무 단편적인 기록만 남아 있답니다. 몇몇 남아있는 기록조차 모두 부정적인 내용입니다. 논어論語는 제목처럼 말들을 묶은 책입니다. 재아가 좀 다른 인물이었다면 논어에서 꽤 멋진 활약을 벌이지 않았을까요. 빼어난 말재주와 말솜씨가 재아의 발목을 붙잡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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