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철학사 후기
오래전부터 동양의 정신, 서양의 기술이라는 구도가 있다. 이는 서구 물질문명의 한계를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동양을 심오한 정신의 세계로 고착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동양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보다 윤리적인 태도가,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해석되곤 한다. 이런 낡은 구도에서 동양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행복한 삶을 위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위해 등등.
지식은 늘 선망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뭔가 좋아 보이는 것이 있기에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발동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선망이 이런 식의 두루뭉술한 ‘영성’에 그쳐버리면 아무런 배움을 낳지 못한다. 이런 태도가 요구하는 것은 지식보다는 감동이기 때문이다. 쩡하니 내 삶에 울림을 줄 말들을 찾다 보면 텍스트가, 고대의 철학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뒷전이 되고 만다.
중국 철학자들이 서양의 철학자들에 비해 분석적이며 논리적인 사고가 부족하다는 인식만큼이나, 중국 철학자들이 서양의 철학자들에 비해 더 윤리적이며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모두 위험하다. 중국 철학자들은 그들 고유의 세계관, 개념, 언어 전통에 따라 해석하고 나름의 논리를 구축했다. 그들이 ‘마음’, ‘본성’, ‘의례’, ‘전통’ 따위를 이야기했다고 해서 늘 맑고 청정한 영혼이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들 역시 성속聖俗의 세계를 오가며 정념의 바다를 허우적대며 건너곤 했다. 성인이라 하여 범부와 무엇이 그리 크게 다르겠는가.
중국 철학을 신비화하지 않는 것. 6강에 걸쳐 중국철학사를 강의하면서 세운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구체적인 시대와 역사적 조건을 설명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보아야 개별 철학자의 사유를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이다.
물론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선은 중국철학사를 통사로 강의한다는 것이 부담이었다. 이천년이 넘는 역사를 꾸준히 서술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부는 할 이야기가 넘쳤고 일부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어 곤욕을 치렀다. 개인적으로는 더 공부해야 할 부분을 찾았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개념에 대한 서술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어 인仁이니 덕德이니, 성性이며 리理며 하는 것을 서술하는데 큰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 설명하기에 꽤 까다로운 개념들이기는 하다. 상세히 설명하려면 각 꼭지마다 적잖은 분량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강의하는 입장에서는 개념을 늘어놓는 것이 꽤 매력적인 방법이기는 하다. 장황하게 개념을 늘어놓는 것만으로 충분히 지적인 권위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고상한 아는체라고 할까?
전공자가 아닌 시민들에게 중국 철학은 어떻게 소개되어야 할까? 고유의 표현들, 독특한 개념들을 붙잡다 보면 정작 무엇인가를 제대로 인식하기, 지적인 소득을 거두기 어렵다. 차후에 이어질 다양한 독서, 학습의 입구가 되는 강의여야 하지 않을까. 가능한 쉽고도 폭넓은 시야를 선물해주고자 노력했다.
강의는 6주로 끝나지만 중국철학에 대한 공부는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본 강의를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아 더 멀리 떠난다면 어떻게 가는 것이 좋을까. 하나의 작은 이정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래 강의에 도움을 주었던 책들을 소개한다.
<중국철학사> 상/하, 박성규 역, 까치
<간명한 중국철학사>, 정인재 역, 마루비
중국철학사를 다룬 여러 책이 있지만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만 한 책을 꼽기는 힘들다. 다만 문제는 <중국철학사> 상하권이 배우 분량이 많다는 것. 우선은 한 권으로 정리된 <간명한 중국철학사>를 읽도록 하자.
중국철학사에 대한 전체적인 구도를 잡는데 큰 도움을 준다. 원제는 <중국사상사>이지만 번역하면서 <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중국 역사의 네 시기를 주목하여 이 시기에 이루어진 사회적 변화와 중국철학의 연관성을 논한다.
<사기>는 중국 고대사를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다만 전문을 일독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워낙 분량이 많고 방대하기 때문. 주요 내용을 꼽아 번역하고, 역사 순대로 정리하여 고대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책이다.
총 6권으로 이루어진 중국철학사. 이 많은 책을 다 읽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들을 소개하는 것은 각 권마다 지리, 경제, 정치, 철학 등의 주제로 장절이 나뉘어 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뽑아 읽기에 좋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남북조, 당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성리학에 대해 서술하는 여러 책 가운데 가장 만족하는 책이다. 간결한 서술이며 기존의 학설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까지. 다만 문제는 현재 품절이라 구하기 어렵다는 점. 전자책으로 구해 읽을 수 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자.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고 송명대 성리학자들을 이해하는데 좋다.
중국사에서 20세기는 매우 어지러운 시기이다. 등장한 인물도 많지만 저마다 주장이 서로 날카롭게 엇갈리기 때문에 종잡기 힘들다. 20세기 활동했던 중국의 여러 지식인들을 둘씩 짝지어서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을 만든 여러 인물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외에도 더 많은 책이 있다. 원전 번역서도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얻을 수 있다. 원전 번역까지 논하면 너무 글이 길어지므로 여기서 줄이자.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기를. 친절하게 응답할 것을 약속한다.
* 아래는 유튜브 강의 영상. 이후 9, 10월 중에 삭제될 예정이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5z5qgRR7h54zE1RRm1S9MckB-8_09i0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