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은 어디 있는가?

나를 물어뜯는 질문들 3

by 기픈옹달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을 이어 사마천은 태사공의 자리에 오른다. 그가 태사공이 되어 느낀 것은 주나라 이래로 전해진 두터운 사명감이었다.


아버님께서는 늘상 말씀하셨다. '주공이 죽은 5백 년 후에 공자가 나왔다. 공자가 죽은 지 이제 5백 년이 되었으니, 누군가 그 뒤를 이어 세상을 밝히기 위하여 <역전易傳>을 바로잡고 <춘추>의 (정신을) 계승하여 <시경>, <서경>과 예, 악의 정신을 찾는 사람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이것은 나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일까? 나를 염두에 두신 말일까? (그렇다면) 내 어찌 그 일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5백 년 주기설은 전국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역사의식이었다. 맹자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5백 년이 지나면 반드시 성군이 일어나고, 또한 세상에 유명한 자가 그 사이에 나온다. 주 무왕 이래로 지금까지 이미 7백여 년이 되었다. 햇수를 가지고 보면 5백 년이 지났고, 시기로 살펴보면 지금이 바로 성군 현신이 나올 때이다. 하늘이 천하를 태평하게 하고자 하지 않으시겠는가. 만일 천하를 태평하게 하고자 하신다면, 지금 세상에서 나를 제외하고 또 누가 있겠는가? (맹자 4-13)


요순으로부터 탕왕에 이르기까지가 5백여 년인데, 우왕과 고요 같은 이들은 요순의 도를 직접 보고서 알았고, 탕왕과 같은 이는 요순의 도를 들어서 아셨다. 탕왕으로부터 문왕에 이르기까지가 또 5백여 년인데, 이윤과 내주 같은 이들은 직접 보고서 알았고, 문왕과 같은 이는 단지 들어서 아셨다. 문왕으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가 또 5백여 년인데, 태공망과 산의생 같은 이들은 직접 보고서 알았고, 공자와 같은 이는 단지 들어서 아셨다. 공자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가 백여 년으로, 성인이 살았던 시대와의 거리가 이와 같이 멀지 않고, 성인이 거주하신 곳과의 거리가 이와 같이 매우 가까운데, 그런데도 계승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렇다면 결국 계승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맹자 14-38)


5백 년 주기설은 전국시대 등장한 새로운 우주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행설 등이 등장하면서 500년이 하나의 커다란 변화를 이루는 변곡점이 된다고 보았다. 500년 주기로 성인이 등장하며 역사가 새로 재편된다고 본 것이다. 이 시대 위에 맹자는 자신이 새 시대의 사명을 이어받았다고 보았다. 마치 주무왕과 공자가 그랬듯이. 사마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편 이 사명은 유가에서 성군의 부재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덕 있는 군주가 등장해야 하는데 아직 등장하지 못했다는. <맹자>의 마지막은 이를 잘 보여준다.


성군이 등장해야 하지만 성군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맹자는 자신이 겪는 시대의 불운을 미리 겪은 선배 공자에게서 해답을 찾는다. 바로 역사를 기록하는 일. 공자의 <춘추>는 이 사명 위에 기록되었다. 맹자는 공자의 <춘추>나 나오자 난신적자가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후대의 인물들이 공과를 판단해 주리라는 희망이다. 그런데 이런 사명, <춘추>에 기댄 역사관은 결국 당면한 시대가 혼란기라는 고발이나 마찬가지였다. 공자가 <춘추>를 썼을 때와 같은 그런 혼란기라는.


사마천의 친구 호수의 질문은 이를 지적하고 있다.


공자의 시대에는 위로는 명군이 없었고 아래로는 현자가 등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자가 <춘추>를 지어 도덕적 기준을 (제시), 예의의 당부(當否)를 판단케 하였지만, 지금 그대는 위로는 명군을 만났고, 아래로는 백관이 각기 직분을 지키고 있어 만사가 이미 다 갖추어져 모두 합당한 질서를 이루고 있는데, 그대는 저술로써 도대체 무엇을 밝히고자 하는가?


참고로 한무제는 중국 역사를 통틀어 손꼽힐 정도로 위세가 대단한 황제였다. 최초의 황제로 스스로를 천명했던 진시황은 얼마를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 뒤를 이어 한나라의 황제들 역시 여러 고충이 많았다. 한나라 초기에는 유씨들을 왕으로 세워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와 경제를 거치며, 유방의 아내였던 여태후를 중심으로 한 여씨 외척을 물리쳤고, 그밖에 소란을 일으킬만한 유씨 왕들도 모두 처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나름 태평성대를 열 수 있는 기반이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었던 셈. 한무제야 말로 통일제국에 걸맞은 시기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춘추>를 이야기하더라도 당대의 치세를 통째로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마천도 이 점을 잘 알 수 있었다.


현사賢士가 등용되지 못하는 것은 군주의 수치이나 군주가 영명하고 성스러운데도 그 덕이 널리 선전되지 않으면, 그것은 신하의 불찰이다. 나는 일찍이 그 일을 맡았으면서도 천자의 성명聖明과 성덕을 방기하고 기록하지 않았으며, 공신, 세가와 현명한 대부들의 공적을 저술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아버님의 말씀을 저버린 것이다. 내 죄는 (실로) 막대하다. 내가 말한 고사의 저술이란 대대로 전해 내려온 것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른바 '작(作)'[왕법의 제작]은 아니다. 그대가 그것을 <춘추>에 비견하는 것은 잘못이다.


무제의 성명聖明과 성덕聖德을 기록하겠다는 사마천의 말은 듣기 좋은 수사처럼 들린다. 사마담은 자신의 시대가 새로운 변화로 가는 길목이라는 점을 강하게 느꼈지만 아들 사마천은 그렇게 이점을 크게 보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에 비하면 사마천은 뭔가 비뚤어져 보인다. 그는 유래 없는 치세에서 출발하는 현재적 사명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과거로부터 이어진 역사적 사명 위에 스스로를 자리매김할 뿐이다. 특히 그에게는 아버지의 유언이 큰 동기이다. 아버지 사마담과 비교하면 사마천은 보다 개인적 차원에서 자신의 사명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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