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으로 나는 쓴다

나를 물어뜯는 질문들 4

by 기픈옹달

사마천의 역사 서술이 크게 달라지는 계기가 생기는데 바로 '이릉의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호수와의 문답이 벌어진 지 7년 후에 벌어졌다. 그는 이릉을 변호하다 한무제의 분노를 사 옥에 갇히게 되었다. 한나라의 옥리는 왕족 조차도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할 정도였다. 그러니 한낱 천문을 보는 관직을 맡은 사마천은 말할 것도 없었다. 옥중의 심문은 훗날까지 그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혹리酷吏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고 몸이 벌벌 떨렸다.


그런 두려움 속에서도 사마천은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지 않았다. 살아야 한다. 과연 그를 붙잡은 건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유언? 아니면 이대로 사라질 수 없다는 절박함?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여튼 그는 살았다. 궁형이라는 치욕스러운 형벌을 받으면서.


(형을 받고) 물러난 그는 자신을 깊이 성찰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였다. 즉 <시>, <서>의 (뜻이) 은미하고 (서술이) 간략한 것은 (그 작자들이) 자신의 뜻을 (그 안에서) 표현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옛날 서백은 유리에 구금되자 <주역>을 확충하였으며, 공자는 진, 채 사이에서 곤경에 처하자 <춘추>를 지었고, 굴원도 쫓겨난 후에 <이소>를 지었다. 좌구는 실명한 이후에 <국어>를 지었고, 손자는 다리를 절단하는 형을 받고 병법을 저술하였다. (또) 여불위가 촉으로 유배된 이후에 (그가 편찬한) <여람>(<여씨춘추>)이 세상에 전해졌으며, 한비자도 진秦에서 수감되자 <세난>, <고분> 편을 지었다. <시>에 수록된 3백 편의 시도 대체로 성현이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 이들은 모두 마음에 울결된 것이 있으나 그 뜻을 (직접)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과거의 사실을 서술하여 미래에 그 뜻을 전하였던 것이다.


궁형을 받고 치욕스런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면서 그는 또 다른 인물들을 만난다. <시>, <서>를 쓴 익명의 저자들을 만나며, 서백과 공자, 굴원과 좌구명, 손빈, 여불위, 한비자 등을 만난다. 사마천이 보기에 이들은 모두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의 삶이 한계를 맞닥뜨린 수간 '글쓰기'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불우함을 해소하고자 했다. 발분發憤의 글쓰기, 울결鬱結 - 맺힌 마음을 풀어내는 글쓰기가 사마천이 찾은 길이었다.


그는 지나간 사건을 서술하는 일을 통해 자신이 경험할 수 없는 미래에 자신을 던지고자 했다. 필멸의 삶이 무너지더라도 글은 남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 남겨 놓는 것은 아니었다. 옛 일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하기. 그렇게 사마천은 과거에 묻어 미래로 넘어가고자 했다. 별처럼 빛나는 당대의 텍스트들처럼 그도 빛나는 저술을 남기고자 했다. 결국 그의 꿈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살기 위해, 살았기 때문에 썼던 것이다. 아버지 사마담은 단지 수직적 역사의 사명 위에서 자신을 놓았다.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아들이 이뤄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사마천은 또 다른 길을 찾았다. 역사 위에 사명을 부여받은 태사공이 아니라, 사마천 자신에서 출발해서 역사를 썼다. 아버지가 역사로부터 자신을 찾았다면 사마천은 자신으로부터 역사를 서술하고자 했다. 사마천이 쓰는 역사는 어떤 사명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삶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나는 이 차이가 <사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불균형을 설명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어디를 보면 <사기>의 저자는 대단히 윤리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윤리는 내다 버리고 강렬한 삶만 남아 읽는 이를 전율케 하는 부분도 있다. 어디를 보면 관변 역사가의 상투적 관점에 묶여 있는가 하면, 어디에서는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모순은 <사기>의 각 편 사이에서, 혹은 한 편 안에서도 사건의 서술과 '태사공왈'로 쓰인 평어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래서 <사기>를 읽노라면 대체 몇 명의 사마천이, 아니 몇 명의 '<사기> 저자'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어떤 이는 이를 아버지 사마담과 아들 사마천의 서술이 포개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즉 부자가 대를 이어온 저술인 만큼 서로 다른 둘의 목소리가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기>를 읽다 보면 불행한 삶을 겪은 한 개인의 목소리를 마주하게 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다양한 얼굴로 등장한다. 사면초가에 울분을 토하던 항우가 되기도 하고, 능청맞은 유방이 되는가 하면, 우물쭈물 늘 남의 뒤치다꺼리만 한 한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앞으로 각양각색 여러 인물을 만날 예정이다. 그러나 이는 여러 인생을 두루 살펴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마천이 기술한 인물은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 감정을 요약하면 억울함이라 할 수 있다. 풀어내지 못하고 마음에 얽혀 있는 응어리. 사마천은 그 응어리 때문에 쓰기를 선택했고 <사기>를 낳았다고 말한다.


'같이 밝은 것은 서로 비추며, 성질이 같은 것은 서로 찾는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 성인이 일어나면 만물의 정이 모두 보이게 된다'고 말한다.

- <백이열전>


사마천은 그 응어리 속에서 과거의 인물들을 만났다. 우리는 또 <사기>를 통해 그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한편 울분에 찬 한 사내, 그 울분을 글쓰기로 풀어낸 한 작가를 만난다.


keyword
이전 03화성인은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