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물어뜯는 질문들 5
고대인에게 '명'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다. '명'은 직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누구나 죽음을 직면해야 한다는 면에서 '명'에는 수명壽命이라는 뜻이 있다. 한편 피할 수 없는 현실, 피하고 싶어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다. 운명運命이란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사마천은 이릉의 화를 겪으면서 얄궂은 운명에 대해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어찌 사마천만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까. 살다 보면 누구나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사마천은 이 당혹스러운 상황을 맞아 이렇게 질문한다.
是余之罪也夫!是余之罪也夫!
이것이 내 죄란 말인가! 이것이 내 죄란 말인가!
따라서 사마천의 울분이란 개인적인 것이되,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갈등에서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명'이라는 얄궂은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그런 부조리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사마천의 저 질문이 어찌 사마천만의 질문이겠는가.
<사기열전>을 펼치면 만나는 두 사람 역시 사마천과 비슷하다. 이 둘은 백이와 숙제로 수양산에서 굶어 죽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글은 <사기열전>의 마지막 글, 사마천 개인을 기술한 <태사공자서>와 서로 공명하고 있다. <태사공자서>가 <사기열전>의 맺음말이라면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 <백이열전>은 <사기열전>의 서문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 임금의 아들이었다. 첫째 백이가 임금 자리를 물려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셋째 숙제의 능력을 눈여겨보았다. 이를 안 백이가 숙제가 임금 자리를 물려받도록 고죽국을 떠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미담은 더 있다. 숙제는 숙제 대로 생각이 있었다. 셋째인 자신이 임금이 될 수는 없다며 그 역시 나라를 떠난 것이다. 결국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둘째가 고죽국의 임금이 되고 말았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서로가 임금 자리를 두고 다투어도 모자랄 판에 서로 임금 자리를 미루다가 전혀 새로운 인물이 임금이 되다니!
공자는 이 둘을 '인仁을 추구하여 인을 이루었다' 평하기도 했다. 이들은 마치 전설 속의 성인, 요임금이나 순임금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었다.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순임금은 우임금에게 물려주지 않았는가. 옛사람은 이를 양위讓位, 임금의 자리를 양보하여 물려주었다고 말했다. 백이와 숙제는 양보의 미덕을 제대로 아는 이들이었다.
헌데 이 둘은 어쩌다 수양산에서 굶어 죽게 되었던 것일까? 고죽국을 떠난 백이와 숙제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둘은 나라를 버리고 방랑생활을 한다. 어느 날 이들에게 훌륭한 인물의 소식이 들려온다. 주周나라의 문왕, 서백창에 대한 미담이었다.
주문왕은 공자도 매우 존숭했던 인물로, 앞서 사마천이 유리에 구금되어 <주역>을 정리했다고 말했던 인물이다. 그를 만나러 백이와 숙제는 먼 길을 떠난다. 그러나 그들이 주나라에 도착했을 때 들려온 소식은 문왕의 죽음이었다. 그것뿐인가. 아들 무왕은 군대를 일으켜 은나라의 폭군 주왕을 몰아내고자 했다.
마침 이들이 주나라에 도착했을 때는 주나라 군대의 출정식이 한창이었다. 무왕은 아버지의 위패를 싣고 전장으로 나서고자 한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만류한다. 이때 이들이 던진 질문이 이렇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사를 지내지 않고, 곧장 군사를 일으키는 것을 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가 군왕을 시해하는 것이 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출정식이 한창인데 거렁뱅이 둘이 나타나 훼방을 놓다니! 병사들이 칼을 들어 이들을 베어버리려는 순간 한 인물이 만류한다. 그가 바로 강태공으로 잘 알려진 태공망 여상이었다. '이분들은 의인義人이시다!'라며 만류했다지만 정말 그것 때문이었을까? 혹시 백이와 숙제를 베어버리면 전쟁의 진면목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무리 폭군이라고 한들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벌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아니, 어쩌면 폭군 주왕의 이미지는 승자인 주나라의 역사가 빚어낸 것은 아닐까? 주무왕은 천명天命을 받들어 군사를 일으켰다고 말하지만 천명이란 자신의 권력욕을 감추기 위한 수사는 아니었을까?
역사는 대체로 승자의 기록이다. 패자의 변명을 듣기란 어렵다. 은나라 마지막 임금 주왕의 변명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공자나 맹자는 이 전쟁이 역사의 당연한 귀결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늘은 은나라를 버리고 주나라를 선택했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를 인정하지 않았다. 주나라에서 나는 곡식을 먹지 않기로 다짐한다. 결국 이들은 수양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뜯기로 한다. 고사리를 뜯어가며 연명하다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
과연 이들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공자는 이들에게 아무런 원망이 없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주무왕의 선택도 옳고 백이와 숙제의 선택도 옳다. 원망할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 공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묻는다. 과연 이들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이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주나라의 통치를 받아들였고, 또한 기꺼운 마음으로 굶어 죽기를 선택했을까? 미담으로 시작한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는 새로운 미담으로 끝나는 온전히 아름다운 이야기에 불과할까?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가 지었다는 시를 소개한다.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도다!
폭력을 폭력으로 바꾸면서 그 잘못을 모르다니...
신농, 순, 하대의 (도덕)이 홀연히 사라졌도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아아! 우리는 떠나련다, 운명이 다하였구나.
登彼西山兮 采其薇矣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適歸矣
于嗟徂兮 命之衰矣
사마천은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를 통해 공자의 관점에 전명적으로 도전하고 있다. 백이와 숙제에게 정녕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오히려 여기에는 백이와 숙제로 대표되는 고결한 이상과 폭력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냉혹한 현실이 서로 부딪히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요임금과 순임금의 미덕은 옛 것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옛 성인들의 미덕은 사라져 낡은 것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고사리를 뜯으며 노래하는 백이와 숙제는 사마천을 닮았다. 이들은 저마다 높은 이상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당면한 현실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배신할 뿐이다. 이상은 권력과 폭력의 손에 너무 쉽게 망가진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사마천 개인의 기록이 없었다면 후대 사람들은 사마천의 <사기>를 이렇게 평가했을지도 모른다. 개인이 겪은 불행에도 '불구하고' <사기>를 저술했다고. 자신의 고통을 <사기>를 통해 '승화했다'고. 그러나 사마천은 명확히 이야기한다. <사기>는 울분의 결과물이다. 사마천은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를 미루어 짐작컨데, 백이와 숙제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털끝만큼의 억울함 없이? 원망함 없이? 아니, 어쩌면 공자의 말을 빌어 너무 쉬운 답을 내놓은 것은 아닐까? 이들에게 어찌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겠느냐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