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물어뜯는 질문들 2
逝者如斯夫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 공자, <논어>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간다. 강과 바다를 구분하기는 하지만,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선을 그어 구분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어디까지가 강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일까. 마찬가지로 역사의 흐름도 마찬가지이다. 뚜렷한 단절 혹은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그 중간, 흐리멍덩한 지대가 있다.
일찍이 펑유란(馮友蘭, 1895~1990)은 <중국철학사>를 서술하면서 중국 사상사를 크게 둘로 나누었다. 바로 '자학시대子學時代'와 '경학시대經學時代'가 그것이다. 자학시대는 제자백가로 대표되는 다양한 사상가들의 시대를 의미하며, 경학시대는 그들의 사상이 경서經書가 된 시대이다. 이런 역사적 변혁기에 가장 주목받는 것은 바로 유가儒家라고 할 수 있다. 펑유란은 공자야 말로 제자백가 가운데 가장 처음 등장한 사상가로 모든 철학의 뿌리가 되는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더불어 경학시대는 공자로 대표되는 유가경전이 국가학의 자리를 취득한 시대로 본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학시대는 진秦의 통일(기원전 221)로 끝나고, 경학시대는 한무제 시기의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6?~기원전 104)로 시작한다. 사마천은 바로 이 시대를 살았다. 사마천의 생몰연도는 명확하지 않은데, 기원전 135년?/145년?~86년?으로 추정된다.
자학시대에서 경학시대로, 한편 왕조로 보면 진秦의 통일 - 초한楚漢의 전쟁 - 한漢 제국의 성립으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천하 경영의 방법으로는 주周 왕실의 봉건제도封建制度에서 중앙집권적 군현제郡縣制로, 다시 이 둘을 절충한 군국제郡國制로 바뀌었다. 춘추전국이라는 제왕들의 시대 - 진시황秦始皇의 황제皇帝 천명 - 항우와 유방으로 대표되는 호걸들의 시대 - 한무제라는 제왕의 재등장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대의 변화상 가운데 하나다.
종합하면 진시황, 영정(嬴政 기원전 259~210)이야말로 한무제 시대에 이르러 완성되어가는 시대의 큰 변혁을 시작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시황제始皇帝라 부르며 역사의 평가를 거부했다. 자식이 아비를, 신하가 임금을 평가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역사(皇帝)의 시작(始)이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름이었다. 만세까지 가겠다는 그의 포부는 한 세대를 채 넘기지 못했지만, 그가 마련한 기틀은 새로운 시대의 토대가 되었다. 게다가 걸출한 인물까지 등장했다. 그와 닮은꼴인 한무제는 황제로 대표되는 새로운 제국의 이상을 실현할만한 그릇이었다.
이런 시대의 변화는 새 시대의 이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사마담과 사마천 부자에게는 새로운 사명을 넘겨주었다. 한무제의 봉선 의식에 참여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며 아들 사마천에게 남긴 사마담의 유언에도 잘 드러난다.
"우리 선조는 주 왕실의 태사로서 아주 먼 옛날 순의 시대와 하대부터 천문을 관장하여 공명이 빛났다. 그 후 우리 집안이 기울었는데, 그 전통이 나에게서 끝날 것인가? 너는 다시 태사가 되어 우리 조상의 직분을 계승하거라. 지금 천자께서는 천세의 대통을 이으시어 태산에서 봉선의 의식을 거행하셨는데 나는 따라가지 못하였다. 이것은 정말 운명인가 보다! 내가 죽으면 너는 반드시 태사가 되어야 한다. 태사가 되면 내가 논하고 저술하고자 한 것을 잊지 말아라. 대저 효(孝)란 부모를 섬기는 것에서 시작하여 군주를 섬기는 것이지만 그 최종 단계는 입신하는 것이다. 후세에 이름을 드날려 부모를 빛내는 것이 가장 큰 효도다. ... 유왕과 여왕 이후에 왕도가 무너지고 예악이 쇠퇴하자 공자는 사라진 옛 전통을 다시 복구, 정리하여 <시경>과 <서경>을 논술하고 <춘추>를 지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학자들은 그것을 본받고 있다. ... 이제 한이 흥기하여 해내가 통일되었으나 나는 태사로서 현명한 군주,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들의 행적을 기록하지 않았으니 천하의 사문史文이 폐기될 것 같아 심히 두렵다. 너는 이것을 잘 명심하거라."
천은 머리를 숙이고 울며 말하였다.
"소자가 불민하오나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옛 기록을 빠짐없이 정리하겠습니다. 어찌 방심하겠습니까?"
( * 이하 번역은 이성규 역 <사기: 중국 고대사회의 형성> )
사마담은 아들 사마천에게 태사공太史公으로서의 사명을 이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사마담이 사마천에게 전해주는 사명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1) 과거적인 것, 2) 현재적인 것, 3) 미래적인 것.
1) 과거적인 사명은 다시 둘로 구분된다. 하나는 주周 왕실 시대로부터 이어온 태사太史라는 직분에서 출발하는 사마씨 가문의 사명이 있다. 또 하나는 공자로 대표되는 사관史官으로의 사명이 있다. 전자는 가문의 전통을 잇는다는 데 가치를 둔다면, 후자는 학자 혹은 사관으로의 윤리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데 가치를 둔다.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주周라는 이상 국가를 그 뿌리로 한다는 것이다.
2) 현재적인 사명은 한漢의 재통일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새로운 왕조를 연다는 기대감. 더불어 그 새로운 시작이 봉선이라는 전통적인 예식으로 완성된다는 데 큰 무게를 두었다. 봉선은 천자가 하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예식이다. 여기에는 춘추전국 말기부터 시작된 새로운 천인관天人觀에서 출발한 또 다른 천자의 모델이 작동하고 있다. 이제 하늘의 대리자, 천자-황제가 다스리는 새로운 천하가 등장한 것이다. 이 새 시대에 걸맞은 서술이 필요하다. 이는 이후 호수壺遂와 사마천의 논쟁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3) 미래적 사명은 '후세에 이름을 드날려 부모를 빛내는 것', 다르게 말하면 효의 실현이다. 효는 유한한 인간의 생명을 무한히 확장하는 의식이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이 바로 제사다. 제사는 죽은 이를 기억하며 그를 오늘에도 유의미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이렇게 기억하는 행위, 효를 통해 유한한 생명은 무한의 시간으로 도약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사마담의 욕망이다. 봉선이라는 새 시대의 등장을 알리는 예식에 참여하지 못한 그는 안타까움 속에 세상을 떠난다. 영광스런 역사적 순간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 시대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그가 아들에게 부탁한 유언이었다. 사관 집안답게, 역사를 서술한다는 과정으로 그는 새 시대의 비전에 동조하고자 했다.
그러나 만약 이것뿐이었다면 <사기>는 훗날 기록된 숱한 역사서 마냥 주인 없는 기록물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건을, 사실을, 진실을 전한다는 점에서는 시대의 사명을 완수하겠지만 또 다른 시선을 열어주지 못한 채로 고전의 반열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기>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제국이라는 시대의 이상이 완성되는 과정에 사마천 개인이 시대의 어둠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어두운 골짜기. 그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두운 골짜기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불행한 선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