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의 성인군자를 기다리노라

나를 물어뜯는 질문들 1

by 기픈옹달
정본正本은 명산名山에 깊이 간직하고 부본副本은 수도에 두어 후세 성인 군자들의 열람을 기다린다. <태사공 자서> 제70을 지었다.

藏之名山 副在京師 俟後世聖人君子 第七十

- <사기열전: 태사공자서>


태산보다 무거운 말이 있다. 어떤 말과 글은 바람에 날리듯 어느새 사라져 아무 자취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말과 글은 선명히 살아 남아 후세까지 전해지기도 한다. 수 십 년을 살기도 하고, 수 백 년, 천 년을 넘기도 한다. 그중에는 인류가 문명을 가지고 있는 한 불멸할 것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고전古典'이라 부른다. 고(古), 낡은 것이지만 필멸의 운명을 뛰어넘는 텍스트. 때문에 고전이란 우리가 도무지 경험할 수 없는, 시간 저편의 아직 오지 않은 그 언젠가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미래의 글. 이렇게 어떤 글은 우리를 영원의 시간으로, 시간을 넘은 또 다른 저편으로 인도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고전의 저자들은 유한한 자신의 운명에 얽매여, 자신이 낳은 글이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눈을 감았다. <논어>의 공자도, <장자>의 장자도, <사기>의 사마천도 자신의 글이 천년을 넘어 자기 이름을 전해주리라는 걸 몰랐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고전을 위대한 저자들보다 이 고전을 또 다른 시간 속에 읽는 그 언젠가의 독자들이 더 복되다.


이 복됨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선형적 시간의 굴레에 얽매여 과거의 글로 읽어서는 도무지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고 아직 경험하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읽는 것도 부족하다. 전자의 읽기가 과거의 정보를 취합하고 익히는데 그치기 쉽다면, 후자의 읽기는 미래를 위한 교훈을 늘어놓는데 빠지기 쉽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또 다른 시간의 틈, 역사를 비집고 들어선 어딘가에서 읽어야만 한다. 그곳에서 고전은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해주리라.


사마천의 <사기>는 방대한 저작이다. 총 130편, 52만 6,500여 자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도무지 한 사람의 손으로 쓰였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거대한 부피. 문자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야 하루에도 수천, 수만 자를 소비하고 생산하지만 사마천의 시대에는 그럴 수 없었다. 편한 키보드 자판은커녕, 종이와 연필도 없었던 시대. 그는 손에 붓을 들고 좁은 죽간 사이에 한 글자씩 적어가는 수고를 감내해야 했다.


죽간 뭉치를 쌓아두면 엄청난 양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책冊을 쌓아두고 그가 마지막으로 적어 놓은 글이 바로 위의 인용문이다. 그는 자신의 글이 당대에 읽히지 못할 것을 알았다. '숨겨 놓는다(藏)'는 말은 그가 당면한 불우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하고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행적 가운데 태반은 의문에 쌓여 있다. 전하는 하나의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황제였던 한무제가 사마천의 기록을 접하고는 크게 노했다고 한다. 자신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냈던 까닭이다. 그렇게 <사기>의 완성이 사마천 자신에게 화를 미치지 않았겠느냐는 주장도 있다.


사마천의 글은 처음에는 <태사공서太史公書> 혹은 <태사공기太史公記>라 불렸다. 태사공은 한대漢代에 천문 등을 관장하던 직위 이름으로, 사마천은 그의 아버지 사마담에 이어 자리를 물려받았다. <사기>의 마지막 글,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보면 이에 관련된 내용이 잘 나와 있다. 사마천은 그의 아버지 태사공 사마담의 유언을 이어, 더 멀리는 '사마司馬'씨라는 그의 먼 조상의 사명을 이어 사기를 쓴다고 말한다. 역사적 사명이 이 방대한 저술을 쓴 일차적인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건이 이 거룩한 사명을 뒤틀어버렸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사명 이외에 사마천 개인이 녹아들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마천의 <사기>'라고 하지, '<사기>의 사마천'이라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기史記>는 말 그대로 역사기록이지만 여기에는 사마천 개인의 삶이 넘실대고 있다. 사마천 자신의 것으로 밖에 서명할 수 없는 고유한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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