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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Mar 29. 2023

해외 공항에서 캐리어 분실이 아이에게 미친 영향




다시 하늘길이 열리고, 우리 가족은 싱가포르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사이 만료된 여권을 새로 만드는 것부터 조금씩 여행 준비에 기지개를 켰다. 출국일이 가까울수록 처음 비행기를 실물로 영접하는 둘째에겐 마냥 설렘으로 가득 찬 시간이, 높은 하늘을 나는 것이 막상 두려운 첫째에겐 설렘 반 두려움 반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 아이들의 여행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까마득한 마지막 해외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공항에서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비행기를 탈 것인지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이 평소 영어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지 않지만, 여행을 가면 모든 걸 영어로 해야 하니 슬슬 영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햄버거 등 자신들의 메뉴를 원 없이 주문할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영어책을 함께 읽었다. 싱가포르 여행을 한 달 남겨두고 집에 있는 영어책 난이도를 살짝 올려 스토리북으로 바꾸어 아이들과 낄낄 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장난꾸러기 캐릭터들의 천방지축 에피소드에 푹 빠진 아이들은 오히려 언어의 갭보다도 스토리가 궁금해 매일 책을 골라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들이밀었다.


두 아이와 함께 하는 첫 해외여행인 만큼 걱정도 컸다. 무엇보다 안전에 있어서 한눈을 팔지 않고 아이들을 잘 챙겨야겠다는 마음과 함께, 정해진 계획에 맞춰 아이들을 보채느라 아이만의 속도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방해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싱가포르에 도착하자, 우리의 여행 스케줄을 비웃기라도 하듯 첫 계획부터 차질을 주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캐리어 분실


함께 부친 유모차는 쉽게 찾았는데, 마지막 캐리어가 컨테이너 벨트를 빙빙 도는데도 우리 집 와인 컬러 캐리어는 나올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 것과 무척 흡사한 캐리어가 남은 걸 보니, 착오로 생긴 분실이라 생각이 들었다. 예정대로라면 서둘러 택시를 잡고 호텔로 체크인했을 시간에 우리는 공항을 맴돌며 혹시나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을 캐리어를 찾아 헤맸다. 모든 승객들이 빠져나간 뒤 공항에 적막감이 드리웠다. 한참을 헤매다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Lost & found 부스로 가서 신고 서류를 작성했다. 우리의 근심과는 달리  세계 1위 공항의 위엄처럼 창이 공항의 스텝들은 덤덤하게 24시간에 연락을 줄 테니 호텔로 먼저 가라고 했다.  


캐리어 분실 사건은 도미노처럼 유심카드  도착 후 공항에서 챙겨야 할 몇 가지 계획들을 연달아 삐그덕하게 했다. 한숨이 나오는 상황에서 나는 조금은 독특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선 계획대로 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아야겠구나! 아이들에게도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르쳐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안정지향적인 첫째 아이는 호텔에 돌아와서도 수심이 깊은 얼굴 표정으로 "엄마, 우리 캐리어는 어딨을까요? 찾을 수 있겠죠?"라는 물음을 남발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럼, 걱정 마! 찾을 수 있어! 혹시 못 찾더라도 우리는 여행을 계속할 거야!"라며 아이를 다독였다.


싱가포르에서의 첫날 일정은 단벌차림으로 시작되었고, 느지막한 오후 도심을 누비는 크루즈를 타는 중에 공항 측 스텝으로부터 캐리어를 찾았다는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그는 호텔로 바로 보내주겠다고 했고, 어떤 여행객이 착오로 우리 캐리어를 가지고 갔다가 되돌려주었다고 이야기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누구보다 불안해했을 아이들을 꼭 안아줬다. 늦은 밤, 호텔 로비 한쪽에 서 있는 우리의 캐리어를 발견하자 아이는 달려가 기념 샷을 남겨달라고 했다. Bag is Back!!


이번 캐리어 분실을 통해 우리 가족에게 미친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크고 작은 감정의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를 2가지로 나눌 수 있겠다.


먼저는, 우리 가족이 모두 안전하게 함께 한다는 것에 감사.

때로는 물건이 많으면 짐을 챙기는 것에 아이들의 손을 놓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오히려 큰 캐리어를 놓고 숙소로 가는 길에서 우리 가족 네 명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걱정하는 아이들을 위로하며, 가족의 누군가가 아닌 캐리어가 분실된 것이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안도감과 감사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잃어버린 게 캐리어라서 다행이라고 아이에게 일러주었다. 아이에게도 우리 가족이 더 소중한 존재임을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물건이 우리보다 중하지 않음을, 혹시 다시 못 찾게 되더라도 그 캐리어 속에 담긴 물건이 없어도 우리의 삶이 지장 받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담담한 마음까지 들었다. 예쁘게 입을 옷들을 바리바리 챙겼지만, 단벌 여행도 가볍고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다음으로는, 유연하고 침착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언어 실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

이 사건은 8살 난 아이에게 적지 않은 쇼킹을 주었다. 아이는 다이소에서 산 5천 원짜리 물총을 비롯해 집에서 애지중지 챙겨 온 아이템들을 떠올리며 다시 못 찾으면 어떡하냐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사건을 해결하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했다. 공항 스텝과 대화하면서 싱가포르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엄마아빠의 모습, Lost&Found 신고서를 작성하면서 여권과 호텔 정보를 다시 체크하는 모습 등등 대응 과정에서 불가피한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모습이 아이에게 영어공부의 동기부여를 제대로 해준 것이다.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이는 꽤 자주 "아빠, 이건 싱가포르 영어로 어떻게 말해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필요한 표현을 익히려고 했고, 진지하게 영어공부에 임하기 시작했다.


하루의 짧은 해프닝을 거쳐 캐리어는 우리 품으로 다시 돌아왔고, 우리는 그 사건을 겪기 전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마인드를 갖게 되었다. 어쩌면 웬만하면 피하면 좋을 일들이 우리에게 터닝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이제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해 봐야지! 우리를 더 성장시키고 성숙시켜 줄 여행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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