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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Apr 11. 2023

엄마,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갈게요.



독립이란 뭘까?

홀로 독, 설 립

스스로 자기를 세울 수 있다는 뜻, 어떤 단체나 상태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는 행위.


우리 삶에는 생애주기에 따라 다양한 독립이 존재하는 듯하다. 신생아기에는 모든 것을 양육자의 손에 의지하지만 아주 조금만 그 시기를 벗어나도 아이는 특정 영역에서 독립을 구축한다. 스스로 뒤집고, 스스로 앉고,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도 손가락 수를 넘어가면서, 아이는 눈에 띄게 해내는 것이 점점 많아진다.


초보 엄마로서 아이의 독립을 경험하는 과정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와', '어떻게 저걸 하지?', '이제 이런 것도 해내네?' 끊임없는 감탄사가 나오는 순간들이 많았다. 반면 어떤 영역에서는 독립을 유도하기 위해 단단히 마음을 먹고 실천한 것도 있다. '똑게육아'라는 잠자리 독립법을 책으로 접하고 아이 스스로 잠자는 패턴을 잡아갈 수 있게 유도했다. 아이를 많이 울리고, 나도 많이 울었다. 겨우 잠자리를 분리시켰나 했는데,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 다시 한 침대에서 자는 허무함이 있었다. 그러나 첫째와 매일밤 이야기하며 베드타임을 보내는 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달콤함이었다. 하마터면 그런 기회를 영영 놓칠 뻔했다는 생각도 든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없듯, 아이의 독립 쉬지 않고 계속 다가온다. '엄마~'라고 칭얼거리며 도움을 구하던 아이가 스스로 옷을 입을 때, 양말을 신을 때, 준비물을 스스로 챙길 때엔 주로 '기특함'이라는 반응이 항상 먼저 나왔다. 항상 애썼구나. 기특하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아직은 내 품, 엄마라는 큰 울타리 안에 있다는 '안심'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초등학교 입학 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아이는 제법 초등학생처럼 의젓하고 씩씩한 형아 모습으로 더 성숙해져 갔다. 겉모습뿐 아니라 아이 내면도 큰 독립의 걸음을 떼는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엄마,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가볼게요!"


도서관 수업을 하러 손잡고 가는 길, 아이는 도서관 입구에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조금 가파르게 느껴져 옆에서 같이 가주고 싶은데... 그러나 마음속 그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아이가 호기롭게 외친 한 마디가 내 입을 막았다.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그래, 해 봐!"라고 웃어줬다.


아이는 막상 자동문을 지나 혼자서 걸어가는 게 어색한 지 머뭇거리다가 "엄마, 한 번 꼭 안아주세요!"라고 엄마 품에 안겼다. 아이의 온기가 진하게 남기도 전에 아이는 다시 씩씩하게 준비물을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두세 걸음 떨어져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데 제법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품 안에 있는 자식처럼 당연하게, 편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원래 그렇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이는 한 번 쓰윽 뒤 돌아보더니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아이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나는 아이를 한 발자국도 따라가지 않았다.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발이 묶인 듯 한참을 서 있었다.


대견하면서도 서운하다.

잘 자라고 있는데도 못내 아쉽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갑자기 아이가 10개월 때 방긋 웃으며 함께 셀카 찍던 영상이 떠올랐다. 구글 포토 스크롤을 끊임없이 내리며 그 영상을 찾아봤다. 그 속엔 노란 비니와 회색 곰돌이 슈트를 입고 웃어주던 아이가 있었다. 그사이 눈에 보이지 않게 흐르던 시간의 양이 극명하게 와닿았다.


아이가 보내는 건강한 독립의 신호를 나도 받아들여야 할 때구나.


다음 날도 아이는 학교 교문이 채 보이지도 않은 곳부터 엄마 손을 조몰락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여기서부터 혼자 가볼게요!"


확인 도장을 받은 것처럼 두 번째 듣는 아이의 말은 처음보다 임팩트는 적었지만 여전히 마음을 아리게 했다. 그리고 아이는 의연하게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먼발치에서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아이를 응원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내 손을 잡은 둘째와 함께 어린이집 쪽으로 걸어갔다.


한 집에 사는 가족이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인생 시기를 잘 넘기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서로 부딪치며 아웅다웅할 때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가족으로서 시기시기마다의 미션을 잘 통과하고, 필요한 교훈과 능력치를 잘 습득해 계속 인생을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이의 독립이 하루 한 날 갑자기 이뤄지지 않아서.

이렇게 아주 조금씩 아이를 품에서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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