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어린 로레인 Aug 24. 2021

엄마 팔꿈치에 집착하는 아이의 진짜 마음



아이에게 애착 이불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물건에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꼭 지니고 있어야 하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애착의 중요함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외출이나 여행마다 아이의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매번 같은 장난감이나 이불 등을 챙기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호기로운 도전인진 모르겠으나, 오히려 나는 아이가 특정 장난감에만 집착하지 않게 골고루 가지고 놀도록 유도했다. 여행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 자야 할 때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숙소에서 제공하는 이불을 덮였다. 아이를 달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난감(쪽쪽이 같은) 외에는 새롭게 접하는 자연환경에서 스스로 놀잇감을 찾아보길 바랬다. 돌멩이 하나, 나뭇가지 하나에서 말이다. 첫째가 18개월 즈음 가족 여행으로 방문한 뉴욕 하이라인에서 작은 물줄기를 발견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처벅 거리며 노는 아이를 보니, 오히려 적응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참 잘한 선택이었어’라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둘째에게도 동일한 육아 방식으로 접근했다. 어린이집도 수월하게 잘 적응해서 다니고, 여행지에서도 현지 상황에 맞게 즐기는 아이를 보면서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겉으로는 늘 씩씩해 보이는 아이, 그런데 내가 무심한 엄마라서 눈치채지 못했던 걸까? 어느 날부터 아이가 나의 팔꿈치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엄마, 팔꿈치 만지고 싶어."


두 살 난 아이는 밤에 잘 때마다 작은 고사리손으로 나의 팔꿈치를 더듬으며 자기 시작했다. 편하게 누웠다가도 아이가 내 팔꿈치를 만지기 시작하면 몸을 옆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팔이 저리기도 하고 자세가 영 불편했다. 몇 번 하다 말겠거니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아이의 집착은 점점 심해졌다. 안아줄 때도 엄마 목을 껴안기보다 양팔의 팔꿈치를 양손으로 만지곤 했다. 대체 왜 이러나 싶어 팔꿈치를 만지는 아이를 한참 관찰했지만 알 수 없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자려고 누우면, 아이가 바로 말을 걸었다.


"엄마, 팔꿈치 만지고 싶어."


가끔씩 엄마가 불편해하는 것을 아는지 아이는 "안 아프게 만질게, 조금만 만질게” 라며, 나를 어르고 달랜다. 대신 손을 잡으면 어떻겠냐고 물어봐도 거부할 뿐이다. 오롯이 팔꿈치만을 만져야겠다고 애원하는 아이. 아빠의 팔꿈치도 거부하고 엄마의 팔꿈치만 원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의 한숨도 깊어져만 갔다. 특정하게 한 곳만 집착하는 것은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육아 고충 관련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아이의 문제 행동을 나무라기 전에 그 이면의 원인을 개선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간 아이와 단둘이 충분한 교감을 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하루하루 전쟁처럼 급박하게 움직이는 일상에다 일에 대한 부담으로 마음이 쫓기다 보니 아이에게 쏟아야 할 관심도 최소한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잘 먹고 잘 입히고 잘 챙겨주는 것만 해도 버거운 엄마라서 아이에게 오히려 불안감을 준건 아닐까. 그래서 엄마의 손도 아닌 팔꿈치를 잡아야만 엄마의 관심을 잡아둘  있었다고 느낀  아닐까. 아이의 진짜 속마음을 유추해볼수록, 내 눈에선 미안한 눈물이 쏟아졌다. 이렇게 된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면, 앞으로 제한된 시간 속에서 가장 친밀한 스킨십으로 아이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로 목표를 삼았다.  


적극적으로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의 말에 호응해주는 것


한 번씩 이른 하원으로 아이 손을 잡고 가볍게 동네 데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보통의 일상에서 개선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다. 조급하게 아이를 재촉하는 대신 시간의 여유를 가지면서 더 많이 안아주고, 뽀뽀하고,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했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눈웃음, 엄마에게 착 감기는 아이의 온기,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많은 아이의 격양된 목소리까지. 마음 다해 아이를 다 보면 어느새 나는 진짜 행복한 엄마가 된다. 아이와 평안한 관계로 발전할수록 아이 마음에도 엄마 사랑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듯했다.


이 글을 쓰는 어느 밤, 지난 몇 개월간 엄마 팔꿈치에 집착하며 잠이 들던 아이가 달라졌다. 잠자리에 누워 잠깐 엄마와 손장난만 했는데, 아이는 스스로 뒹굴며 자유롭게 잠이 들었다. 순간 뭐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에 오늘은 아이가 팔꿈치를 만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척 감격스러웠다. 보이지 않았던 아이 마음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하찮아 보이는 아이의 집착 행동이라 넘겨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궁극적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사랑과 관심을 채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 뒤 며칠 관찰해본 결과, 아이는 일주일에 한두 번 잠깐씩 엄마의 팔꿈치를 만지려고 하지만, 예전만큼 집착의 정도는 확실히 줄었다. 아이가 자라 가는 순간순간을 더 사랑하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사랑해 아가.

이전 23화 아이와 아무 버스나 타고 여행을 떠났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