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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Nov 19. 2021

빼빼로가 소환한 엄마의 라떼


빼빼로 데이가 다가오자 아이 어린이집 친구들과 주변 이웃에게 돌릴 빼빼로 다섯 상자를 주문했다. 오리지널, 아몬드, 누드, 크런치까지 형형색색의 빼빼로 박스들이 쌓이자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훈훈함이 몰려왔다. 이제 제법 글씨를 쓰는 큰 아이가 친구들에게 나눠줄 빼빼로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하트를 그렸다. 삐뚤빼뚤한 글자에 아이만의 사랑이 묻어났다. 


빼빼로 데이 당일 오후,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는 들뜬 마음으로 자신의 가방을 열었다. 마침 빼빼로를 나눠준 친구들이 있어서 4개나 받아 왔다는 것이다. 서로 주고받으니 예전처럼 부끄럽지 않고 즐겁게 빼빼로를 나눠줄 수 있었다고. 아이의 자랑을 들으며, 나는 학창 시절 빼빼로 데이 추억이 떠올랐다. 


“엄마도 중학생 때 엄청 큰 박스에 빼곡히 빼빼로 선물을 받은 적 있어.”

“왜 그렇게 많이 줘요?”

“엄마 좋아하던 남학생들이 준거야”

“혼자 다 먹었어요?”

“아니, 집에 가져가서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이랑 꽤 오랫동안 나눠 먹었지ㅎ”


우습게도 어린 두 아이에게 한때 인기를 자랑하고 싶었을까?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하던 나는 순간 내 자신이 철부지처럼 느껴져 피식 웃음이 났다. 뒤이은 아이의 질문은 그런 나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엄마, 그럼 왜 그 사람이랑 왜 결혼 안 했어요?”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돌직구에 나는 당황했다. 그러게, 나는 왜 그 남자들과 결혼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때의 순진했고 풋풋했고 설레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전학과 이사로 인연이 이어질 수 없었던 것도 있지만, 당시에 인연이 계속되었다고 해도 나는 그들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제는 아이에게 엄마가 어떻게 아빠를 만났는지 연애 서사를 읊어줘야 하나? 싶었지만, 각설하고 담백하게 답을 했다.


“그때 엄마는 학생이었으니까. 결혼할 타이밍에 만난 사람과 결혼하는 거야. 엄마는 그래서 아빠를 만난 거지.”


아이는 아빠를 만났다는 엄마의 말에 안심이 된 듯, 기분 좋게 발걸음을 뗐다. 아이는 엄마의 선택에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맞는 답을 원했다. 나는 선명한 이유를 다시 떠올렸다. “그래서 너네가 엄마 옆에 있는 거란다!” 아이와 나누는 대화가 이제는 추억까지 소환하다니, 점점 더 풍성해지는 대화에 그 누구와 대화하는 것보다도 신이 난 하루였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 미팅으로 늦은 퇴근을 한 남편이 갑자기 꽃다발을 내밀었다. 내심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잦은 야근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는 남편이 짠했던 터라 퇴근해서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신랑의 섬세함에 감동한 나는 물었다.


“오늘 빼빼로 데이라서 주는 거야?”

아주 심플하게 YES/NO로 답할 수 있을 질문이었지만, 신랑은 이렇게 답했다.



“아니, 뭐 그런 날만 주는 건가? 주고 싶을 때 주는 거지~”

마음에 훅 들어온 신랑의 답에 나는 아이들을 깨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아들아 봤지? 엄마 이런 남자랑 결혼하기 위해서 안한거야~”라고. 고마워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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