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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Mar 18. 2022

초코셰이크 한 잔과 맞바꾼 엄마 부심

육아 에세이를 쓰면서 엄마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같은 행복한 기억들을 남겨왔다. 그러나 현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매 순간이 꼭 행복한 건 아니다. 소위 희로애락의 다채로운 감정들이 휘- 소용돌이치며 흘러간 뒤엔 그중에서도 묵직한 감정인 행복했던 기억만, 좋은 기억만 남겨지는 듯하다.


나에게 엄마라는 정체성을 거부하고 싶은 순간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날것의 감정을 마주할 때”


어느 주말 오후, 아이들과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초코 셰이크를 두 잔 테이크 아웃해 갈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들떠있었다. 도착해서 차 안에서 차가운 셰이크를 아이들에게 나눠주면서 조심히 천천히 먹으라고 당부했다. 달콤한 유혹을 쉽게 제어하기 힘들 듯, 아이들은 차가워하면서도 빨대에서 입을 떼지 못했고 아주 빠르게 컵을 비워갔다. 막상 공원에 내려 놀기에는 바람이 차갑기도 하고, 찬 음료를 흡입한 아이들이 감기에도 걸릴까 우려되어 차에서 풍경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듣고 싶다는 오디오 클립 몇 개를 틀어주면서.

약속한 대로 틀어주고 난 뒤, 아이에게 다시 핸드폰을 돌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5번, 10번을 말해도 아이들은 엄마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엄마 말이 안 들리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서야 첫째가 상황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럼에도 둘째는 “싫어, 이거 할 거야”라며 거부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인내심을 발휘해 기다려줬다면… 지혜롭게 아이에게 설득의 대화를 이어갔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결국, 그간 고집하던 좋은 엄마의 이미지를 지켜내지 못했다. 손들기로 혼을 내곤 애써 감정을 추슬렀다. 그러나 계속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장난치는 둘째가 벌도 받지 않겠다고 하자, 나는 내가 붙잡고 싶었던 선을 넘겼다. 엄마의 언성이 높아지자 그제야 아이는 핸드폰을 돌려주며 울음을 터뜨렸다.


육아를 하다 보면 종종 지나 보면 별것 아닌 상황일 수 있는 사건으로 날것의 감정들을 마주하는 경험을 한다.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서서히 쌓여있다가 이따금씩 욱한 성질이 올라오기도 하고, 어떤 하루는 설움이 복받쳐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속상할 때도 있다. 애쓰고 애쓴 노력들이 허사로 돌아가는 것 같은 허무함에 모래성 무너지듯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다.


우습게도 발버둥 쳐서 겨우 육아라는 산꼭대기에 다다랐는데 순식간에 미끄러지듯 낭떠러지로 빨려 들어가는, 일종의 육아 방향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이와 관계는 멀어지고 싶지 않으면서 잘 유지되지 않는 것은 순전히 나라는 사람이 아이의 어떤 행동이라도 받아낼 그릇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마주할 때면 무기력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 안에서 튀어나온 날것의 감정들은 이미 쏟아 다시 담을 수 없는 물과 같다. 주섬주섬 수건을 가지고 쓸어 담아야 하듯 정리하는 과정이 뒤따른다.


일이 터진 그날도 집으로 돌아와서 급격히 기운이 떨어져 침대에 한참을 누워있었다. 그리고 내 속의 진짜를 마주한 서러움에 한참을 베개 흠뻑 눈물을 쏟았다. 한바탕 감정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나가야 다시 새 기운을 차릴 수 있다. 다시 일어나 내가 맡은 일을 이어가면서 아이와도 차분히 대화할 시간을 마련해 본다.


“엄마도 부족한 게 많아서 그래, 엄마를 도와줘…”


제법 대화가 통하는 첫째에게 미숙한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길 부탁했다. 이것이 좋은 육아의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완벽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아이에게 남았을 감정의 파편들을 쓸어 담고 싶은 마음에서 수줍은 손을 내밀었다. 감사히 아이는 엄마의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한 마디를 던졌다.


“아잇, 그럼 나도 엄마가 여러 번 말하지 않게 잘 들을게요”

“고마워, 우리 파이팅 하자는 의미로 하이파이브하자”


그리고 전하지 못한 메시지는 마음의 소리로 대신한다.


‘아들, 엄마가 이런 엄마라서 참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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