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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Sep 01. 2021

아이 기저귀 갈아주시는 시아버지



육아는 돕는 손이 많을수록 수월하다. 다들 아이를 낳을 때쯤 친정이나 시댁 가까이로 이사 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먼 지방에 계시는 친정 부모님과 일하시는 시어머니로 인해, 일찌감치 그런 기대는 접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도움의 손길을 얻었다. 바로 시아버지.


2013년 여름, 남자 친구 부모님을 처음 뵀다. 그 해 1월에 교제를 시작했으니 첫인사로 빨랐던 것 같기도 하지만, 가볍게 밥만 먹는 자리였다. 유독 말씀이 없으셨던 아버님의 인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집에서는 아빠가 대화의 80% 이상 차지하기에, 나는 세상 모든 아버지가 다 그런 줄 알았다. 아버님이 말씀 없으시니 어색하기도 하면서, 무뚝뚝한 분위기가 내심 근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상견례 자리에서조차 말씀이 없으신 아버님께 보다 못한 아빠가 "사돈어른은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물으며, 발언권을 내어드릴 정도였다.


매사에 감사해하시며, 다른 사람에게 본인의 것을 선뜻 내어주시는 우리 아버님. 나는 그런 분과 남자 친구 아버지에서 정식으로 가족이 되었다. 아버님은 은행을 다니시다가 IMF 시기에 명예퇴직 하시고, 자영업을 오래 하셨다. 그 마저도 내가 결혼할 즈음 정리하시고, 지금은 쉬시는 중이다. 어머님이 직장생활을 계속하시니, 자연스럽게 집안일은 아버님의 차지가 되었다.


첫째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고 싶었다. 그러기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어린이집에 보내기는 아직 어리다 보니 잠깐 돌봐줄 손길이 필요했다. 그때 신랑도 어머님도 아버님께 맡기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다. 나는 망설여졌다. 주변에서 아버님이 아이를 봐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고, 무뚝뚝하신 우리 아버님이 아이랑 시간을 잘 보내실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짬을 내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내 인생 비전과 하고 싶은 일을 PPT로 정리해 노트북까지 챙겨서 시댁으로 출동했던 기억이 난다. 상황이 웃기지만 아버님의 의견이 중요하니, 제대로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부모님 앞에서 정식 PT를 하고 나니, 아버님이 입을 떼셨다


“애는 내가 봐줄 테니까, 가서 일해라!”


흔쾌히 승낙해 주신 덕에, 나는 하늘을 날아갈 듯 신이 났다. 아직은 어색한 아이와 아버님을 생각해서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기로 했다. 이유식 먹이기, 기저귀 갈기, 재우기... 천천히 진도를 나갔다. 초반엔 아이가 엄마 없이 낮잠 드는 게 힘들어 두어 시간 넘게 울기도 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육아에 속상해하는 아버님을 볼 때면, 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다음번에 오셔서는 더 적극적으로 아이와 눈 마주치고, 안아주고, 놀아주시며, 육아에 최선을 다하셨다. 그런 노력 덕분에 어느 순간 아이는 아빠보다도 할아버지를 더 찾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을 돌봐주셨을까? 일주일에 두 번씩 아버님은 친히 1시간 거리의 우리 집을 방문해 주셨다. 우리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오히려 밥도 차려놓지 말라고 하시던 아버님. 감사하게 아이는 잘 자라주었고, 이듬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버님과의 육아도 마침표를 찍었다.


그 뒤 2년이 채 안되어 둘째가 태어났다. 나는 애가 둘이 되면,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를 얻어 당장 멈출 수 없게 되었다. 또다시 아버님 찬스를 쓸 수밖에. 오랜만에 다시 육아를 할 생각에 아버님은 감을 잃은 것 같다며 한발 뒤로 빼셨다. 다시 갓난아기를 본다는 것이 아버님도 겁나셨던 것이다. 그럼에도 며느리를 위해 아버님은 다시 용기를 내셨다. (나도 참 유별난 며느리라고 생각한다.)


아버님은 그렇게 둘째가 6개월이 들어설 무렵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돌봐주셨다. 아이는 첫째와는 다른 매력으로 아버님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안정적인 돌봄이 이어졌다. 몇 번 오고 가시더니 어머님께 이렇게 말씀하셨다고..."아가가 눈에 들어오니까, 더 사랑스럽다" 참 감사하게 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집안 정리도 못하고 아버님을 맞았다. 서둘러 일하러 나가야 했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사이 아버님은 귀가하시고 설거지를 하려고 주방으로 갔는데, 분명 지저분했던 가스레인지가 깨끗해져 있었다. 첫째 때부터 아버님이 다녀가신 날은 집안에 우렁각시가 다녀간 것처럼 변화가 있었다. 어느 날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분리수거통이 말끔히 비어있었다. 어느 날은 청소기에 꽉 찬 먼지통이 비어있었다. 아버님 드시라고 차려놓은 식사는 매번 깔끔하게 설거지가 되어있었다. 아버님은 아이의 낮잠 시간을 짬짬이 활용해 며느리가 바쁜 일상에 놓치고 있던 것들을 챙겨주셨다.


아버님이 보여주시는 사랑은 그것이었다. 말이 아닌 묵묵한 행동들.


그날 밤 나는 신랑한테 우리 아버님을 참 대단하시다고, 자기는 진짜 좋은 아버지를 뒀다고 말해줬다. 이제는 두 아들 모두 어린이집에서 돌봄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손을 졸업했다. 육아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나의 육아 담을 이야기하면 신기한 반응이다. 그들이 듣는 보통의 시월드는 하나같이 안 좋은 이야기들 뿐이다. 어쩌면 우리 중에 시댁과 관련한 미담이 있다고 해도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건 눈치가 많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서, 너도 안 좋은 점을 말해!’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 듯. 그래도 결혼으로 만난 가족, 시댁 덕분에 며느리로서 참 감사하다.


(아버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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