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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Jul 12. 2021

아프니까 비로소 깨닫는 것


어느 수요일 새벽, 잠결에 빙- 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점점 돌아가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꿈이 아니다. 온 세상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우선 몸을 일으켜 심호흡을 하며 시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빙빙 도는 건 더 심해질 뿐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이 깰 거 같아 신랑을 부르지도 못하고 겁에 질린 채 혼자 버텨냈다.


시선이 360도 쉬지 않고 돌아가니, 멀미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화장실로 달려갈 수도 없어 침대에 그대로 게워냈다. 빈속이라 쓰디쓴 위액까지 쏟아내며 온몸은 식은땀에 흠뻑 젖어갔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어지럼증이 계속되자, 다시 누워서 시선이 조금이라도 잡히는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봤다. 구토와 헛구역질을 반복하다 겨우 진정이 되는 각도를 찾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어지럼증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침에는 주로 아이들이 잠결에 엄마 품에 뒹굴다가 기분 좋게 일어나곤 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첫째가 눈도 안 뜨고 내 품에 다가오려 했다. 다급한 마음에 "안돼! 엄마 여기 토했어…" 힘없는 목소리로 아이를 밀쳐냈다.


토끼눈이 된 아이는 엄마와 이불을 번갈아 쳐다봤다. 엄마가 아프다는 상황을 이해하더니, 곧이어 깬 동생을 데리고 거실로 나갔다. 엄마한테 가고 싶다고 우는 동생에게, "형아한테 와! 여기 재밌는 거 많아~" 장난감을 쥐어주며 천연덕스럽게 어르고 달랬다. 위기의 상황에서 침착하게 행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진심 대견스러웠다.


나의 증상은 이석증이었다. 시어머니도 여러 번 같은 증상을 겪었던 터라, 신랑의 대처는 능숙했다. 다만, 내 상태는 이석증 중에서도 꽤나 심각한 편이라고 했다. 3일 간 매일 교정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전정기관 속 까다로운 돌멩이들이 제자리를 되찾아가는 과정은 꽤 더뎠다. 강렬한 어지럼증을 겪고 나니 일상으로의 복귀도 쉽지 않았다. 후유증처럼 남은 어지럼증으로 아래를 쳐다보며 아이와 눈 마주치는 것도, 기저귀 갈아주려 앉았다 일어서는 것도 힘들었다.


아프기 직전까지만 해도 태산처럼 쌓인 할 일에 마음이 쫓겼는데, 이렇게 눈앞이 핑 돌기 시작하니 모두 먼지처럼 의미 없이 흐트러졌다. 삶의 우선순위가 다시 리셋되는 시간이었다. 걱정 어린 가족들의 연락을 받으며, 이렇게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수시로 눈물이 고였다. 그래, 내 몸을 소홀히 하지 말자. 나를 아끼자.


며칠을 누워 지내보니 그동안 내 손길이 닿지 못했던 집안 구석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아프니 집안도 아이들도 신랑도 잘 지내지 못했다.


“나는 나만의 것이 아니구나..”


사랑하는 남편의 아내이자 사랑하는 아이들의 엄마로서 내가 건강하게 있는 것만으로 가정이 지켜진다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흔히 엄마는 강인하다고들 말하는데 막상 아파보니, 강인하기 위한 그 이면의 '애씀'이 더 크다는 걸 알겠다. 아직 어린아이들과 오래오래 함께 하기 위해선 건강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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