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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Jul 09. 2021

자기야, 우리 검사 한 번 받아보는 거 어때?


처음 만난 사람과 한집에서 같이 살 수 있을까? 당연히 무리다. 우선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인지, 어떤 스타일인지, 서로 맞춰가는 우여곡절을 거쳐 정말 나에게 맞는 사람인지 확인한 후에야 내 공간으로 초대할 것이다. 마치 육아는 그러한 상황을 서슴없이 허용하는 것 같다. 


갓 태어난 아이의 존재만으로 내 공간과 모든 일상은 뒤흔들렸다. 그리고 아이가 자라면서 서서히 본래 가진 캐릭터가 나타나기 때문에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살아내는 과정은 치열하게 느껴졌다. 나의 시간과 마음을 어디까지 내어줘야 하는지 가늠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아이 마음을 후련하게 만족시킬 육아를 시전 하기엔 준비도 부족했고 역량이 많이 달렸다. 


하루 이틀… 반복되는 실패로 얼룩진 육아라이프로 스트레스가 눈덩이처럼 쌓여갔다. 매일 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구나’ 깨달을 때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울다 지쳐 잠든 다음날, 어김없이 찾아온 아침이면 또다시 육아 레이스를 이어가야 했다. 


돌아보니 영유아기의 두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도저히 못 넘길 것 같은 엄청난 챌린지였다. 자기가 외동인 줄 알다가 난데없이 동생이 찾아온 큰 아이의 질투심은 두 아이를 동시에 케어하는 게 힘들게 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동생으로부터 엄마를 더 사수하려고 했다.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할 때면 동생이 엄마에게 안기는 게 싫은지 자꾸 엄마 손, 엄마 품을 독점하려고 달려들었고, 작은 아이는 형의 덩치에 눌려 제대로 힘을 쓰지는 못하고 속상함에 입만 삐죽 내밀었다. 사이좋게 안아주려고 여러 번 타일러봐도 아이는 계속 동생에 대한 경계를 풀지 못했다.


막상 처음부터 큰 아이가 동생을 경계한 것은 아니었다. 신생아 시절 가만히 누워있을 때는 그저 꼬물거리는 게 귀엽다고 했다. 점점 뒤집고 기어 다니다가 어느 순간 걷기 시작하면서 행동반경이 형아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생각지 못하게 형아의 작품을 부서뜨리거나 망가뜨리면서 자신의 허락 없이 다가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루는 형이 만들어 놓은 풍차를 인정사정없이 찍~ 찢어버리는 바람에 큰 아이의 설움이 폭발해 버렸다. 집이 떠나가라 악을 쓰면서 자기가 아는 가장 나쁜 말로 (대부분은 동화책에 등장한 내용)을 쏟아냈다.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어, 경찰 아저씨가 잡아가라고 해! 할아버지 집으로 보내야 돼!"

소파에서 눈물 콧물 돼서 한참 울더니 스스로의 감정이 다스려지지 않자 옆에 다가오는 동생을 밀치려고 손을 뻗었다. 이제 막 걷는 둘째가 넘어질 것 같은 다급한 상황에서 나는 첫째에게 엄한 말로 경고할 수밖에 없었다. 


 "어허, 힘이 센 사람은 약한 사람한테 그러면 안돼! 속상해도 말로 해야 되는 거야, 힘을 도와주는데 써야 영웅이지!" 


그러나 그런 말이 속상한 아이한테는 와닿지 않았다. 분한 상태로 마음에 있는 말 없는 말 마구 쏟아내는 아이를 보면서, 동생에게 매번 예민하게 반응하는 첫째에게 서운함이 몰려왔다. 이미 동난 엄마의 마음을 더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문득 직장생활에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듯이 육아도 멘땅에 헤딩하다 보면 나만의 육아방식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수년 전 나의 호기로운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아이의 컨디션과 새로운 성향을 발견하면서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즉흥적으로 꾀를 내는 벼락치기의 효과도 다한 것 같았다. 점점 산으로 가는 지금, 나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이 막막함에 사로잡혔다. 육아에 치인 날이 반복되면서 나와 아이 관계는 점점 극으로 치달았다. 그 무렵, 신랑은 나에게 이런 말을 꺼냈다. 


“자기야, 우리 검사 한 번 받아보는 게 어때?”

“갑자기 무슨 검사?”

“부모랑 아이의 기질을 분석해 주고 그에 맞게 육아 가이드를 제공해 준대.”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육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제라도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로잉맘 기질분석은 5가지 기질들이 사람마다 다른 크기로 드러나는데 이를 분석해 기질에 따른 육아를 제안해 주는 검사였다. 이왕 할 거 제대로 받기로 한 우리는 아이뿐 아니라 주양육자인 엄마, 아빠까지 모두 참여하기로 했다. 서비스를 신청하니 집으로 두툼한 서류봉투가 도착했다. MBTI나 IQ 검사 못지않게 꽤 많은 질문지를 보니 아득했지만 일일이 시간을 들여 간절한 마음을 담아 답을 체크했다. 부디 암흑 같은 육아 상황에 돌파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결과지를 보내고 나니 얼마지 않아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결과는 간단하게 앱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기질을 형형색색의 큐브로 디자인하여요 쉽게 이해하기 쉬운 구조로 표현되어 있었다. 결과지를 읽어 내려갈수록 나는 점점 할 말을 잃었다.

새로운 것을 보면 달려드는 빨강 블록 = 엄마는 95%, 아이는 25%

위험하다고 느끼면 피하는 파랑 블록 = 엄마는 4%, 아이는 78%

다른 사람의 감정에 민감한 노랑 블록 = 엄마는 84%, 아이는 76%

파고들어 몰두하는 분홍 블록 = 엄마는 90%, 아이는 67%

오감이 예민한 초록 블록 = 엄마도 아이도 50%.


이 아이가 내 배에서 나온 거 맞아?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내 아이라는 당연하고 익숙하게 여겼던 지난날의 내 가이드가 상대의 입장에선 꽤 무례했겠다는 생각에 소스라치게 낯부끄러워졌다. 사회에서도 새로운 관계를 쌓을 때면 아주 천천히 탐색하며 관계에 공을 들이는데, 아이에게도 그런 접근을 했어야 했다. 고작 5살 난 아이가 얼마나 힘들지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 참 슬펐다. 특히나 도전과 변화를 즐기는 성향을 가진 나에 비해, 새로운 상황에서 아이가 느꼈을 불안함과 스트레스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리포트의 상세한 내용을 찬찬히 읽어볼수록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부딪히며 소모했던 그동안의 시간을 모조리 되돌리고 싶었다.


나는 그동안 아이와의 다름에서 얼마나 쓸데없이 많은 에너지들을 낭비했나 비로소 깨달았다. 아이가 흘렸을 속상함과 원망의 눈물을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해졌다. 더는 그런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 졌다. 기질 분석 검사를 통해 서로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관계를 맺어야 할지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엔 기질이 다른 사람 네 명이 산다. 그래서 아빠↔엄마, 아빠↔첫째, 엄마↔첫째, 아빠↔둘째, 엄마↔둘째, 첫째↔둘째까지 총 6개의 관계를 잘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전에 EBS의 어떤 교육 프로그램에서 식구가 많을수록 복합적인 사회관계를 미리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을 다룬 적이 있는데, 그 장점을 실현하는 현실은 정말 치열하기 짝이 없다.


나 밖에 모르던 내가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은 원만한 곡선이 아니다. 하나씩 밟아나가면 되는 정갈한 계단도 아니다. 처음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가슴 벅찬 감격과 행복이 몰려오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어렵고 험난한 코스를 타는 듯하다. 그럼에도 나를 닮은 아이들을 잘 품을 수 있게 더 넓은 마음을 가진 엄마가 되어보고 싶다. 검사를 계기로 새롭게 다짐했다. 먼저는 아이가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시간적인 여유를 내보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만약 급한 일이 있다면 눈이라도 마주치며 아이를 이해시키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아이의 입장을 먼저 헤아려보는 관점으로 세팅해 둔다면 나의 말과 행동은 전보다 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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