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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Aug 04. 2023

프롤로그 |어느 날 길에서 20년 뒤의 나와 마주쳤다.

나는 오늘도 엄마라는 존재로 살면서 

하루치만큼 밀도 있게 레벨업 중이다.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나 보다. 


한 아이 육아에서 두 아이 육아로 레벨업 하는 과정은 체감상 두 배가 아니었다. 2의 제곱승이라고 할까? 둘째가 태어날 무렵, 첫째 아이가 스스로 걷고 기저귀도 떼고 말도 쫑알거리는 수준까지 자라주었지만 아이는 아직 네 살 일 뿐, 그 어떤 협조도 바랄 수 없었다. 정신적인 케어가 필요한 첫째 아이와 온 눈길과 손길을 쏟아야 하는 둘째 갓난 배기를 대하고 나면, 나는 너덜거릴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일이 좋아서 다양한 형태로 커리어를 이어왔다. 동시에 육아 레이스 역시 쉬지 않고 달려왔다. 잠시나마 일에서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충전이 되는 듯하다가도 육아에서 무언가 풀리지 않을 때면 바람이 빠져나간 풍선처럼 한 없이 늘어졌다. 


그렇게 어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초보엄마의 평범한 하루. 한 살배기 아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네 살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지친 기색이 온 얼굴과 어깨에 덕지덕지 다 드러나 있고, 좁은 골목길에서 빨리 달리는 자동차를 피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가는구나!’ 싶은 그때.


어느 중년 부부가 스치듯이 지나가면서 우리를 쳐다봤다. 살짝 눈이 마주친 중년 아주머니의 눈빛은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옷차림이나 인상이 아닌 그 눈빛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분은 나를 쳐다보고, 큰 아이를 쳐다보고, 유모차에 탄 작은 아이를 쳐다보았다. 흐뭇한 미소를 띤 채, 마지막으로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나를 향해 "참 좋을 때야, 참 행복할 때야, 참 부럽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치 20년 뒤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듯.  


흔히 닮은꼴 중에서 싱크로율이 높을 때 도플갱어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도플갱어를 만나면 큰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금기가 늘 따라다닌다. 종종 누군가를 닮았다는 별명 같은 말을 들었지만, 나는 나와 정말 닮은 사람을 실제 마주한 적은 없다. 그래서 그런 일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거라고 여겼다.


순간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미 그분을 지나쳐 몇 발자국 앞서간 나는 잠시 멍해 있다가 뒤돌아 그 아주머니를 찾아봤다. 아쉽게도 사라진 뒤였다. 세상에서 부러움의 눈빛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 높은 지위를 가졌거나, 큰 성공을 했거나, 부유한 사람이거나, 아우라가 빛날 만큼 잘난 사람들일 것이다. 과연 내가 그런 부러움을 받을만한 사람인가? 그 아줌마의 눈빛이 담은 의미는 뭐였을까?


컵에 반만 담긴 물을 보고 "반만 남았네!" vs "반이나 남았네"라고 표현하듯 우리는 순간순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관점에서 결과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내가 육아를 단순히 버거운 것으로만 여기기엔 실은 육아가 주는 선물이 참 많다. 드넓은 모래밭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진 셈이다.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육아의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더 적극적으로 쟁취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미 이 트랙에 올라탔다면 남부럽지 않은 시간으로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만약 20년 뒤의 내 눈빛이 지금의 시간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눈빛이라면 얼마나 슬플까? 만약 20년 뒤의 내 눈빛이 지금의 시간을 정말 잘 살아냈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는 감사의 눈빛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부터 내 매일매일의 결괏값은 '행복이다!' & '가슴 벅찬 기쁨이다!' & '더할 나위 없이 감사다!'라고 선언했다. 엑셀함수라고 생각했을 때, A+B=행복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결괏값이 정해지면 어떤 자극(A)이 들어오던 나(B)는 결괏값에 맞춰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제시해 봐도 '이게 가능해?'라는 말이 단숨에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나는 ‘행복’이라는 색안경을 낀 채 육아를 다시 바라보고 깜짝 놀랐다.

1. 아이들은 전적으로 나를 지지하고 열광하는 Big fan이다. 이번 생에 어디서 이런 팬들을 만나겠는가?

2. 나날이 급성장하는 영유아기, 오늘 이 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나를 닮은 이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3. 함께 하는 지금의 순간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감사함이 몰려왔다. 부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자, 나는 나에게도 시선이 바뀌어야 함을 느꼈다. 수직적인 성장을 추구하고, 일에 과몰입하는 결과 지향적인 사람이라 스스로에게도 관대하지 못했던 나를 이제는 느긋하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우리의 지금 이 순간은 지금 밖에 없는 거니까. 나 스스로, 독촉하지 말고 느긋하게 이 순간에 몰입하도록 넉넉한 마음을 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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