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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Oct 01. 2023

엄마, 엄마는 진짜 이름이 뭐예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기점은 보통 통성명부터다. 먼저 서로 이름을 묻고, 자연스레 관심사를 나누며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관계가 쌓이는 거니까. 그것이 가장 기본이다. 새로운 모임에 나갔을 때 누군가 내 이름을 묻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에게 관심이 없거나 관계적으로 이득이 없을 것 같다는 암묵적 뉘앙스로 해석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럴 때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길, 내 존재를 알아차려주길 목말라했다.


그런 나의 인생에 전혀 다른 관계 맺기가 시작되었다. 얼떨결에 내 진짜 이름 위에 엄마라는 이름표를 덧붙이고 런닝맨처럼 육아 레이스가 펼쳐졌다. 스타트라인에 선 나는 내 품에 안긴 신생아에게 ‘나는 네 엄마야’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저 새로이 주어진 이름표에 맞춰 고군분투 달려왔다. 아기는 돌 즈음부터 입이 트여 "엄마"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이젠 하루에도 수도 없이 엄마를 부르며 나를 찾는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그 어떤 관계보다 진하게 서로의 인생을 파고들었다.


어느새 육아 6년 차, 두 아들과 보내는 저녁시간은 단순하다. 저녁을 먹고 잠이 들기 전까지 아이들과 학습 활동을 하거나, 주로 놀이를 하며 보낸다. 하루는 큰 아이 수학 학습지를 풀기로 했다. 널따란 식탁에 둘이 앉아 학습지 진도를 나가는데, 세 살 난 작은 아이가 그 모습을 보더니 무척 따라 하고 싶어 했다. 잠시 후, 색연필과 큰 도화지 한 장을 들고 옆에 앉았다. 자기도 여기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졸랐다.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한쪽에선 숫자 패턴에 대한 문제 풀이 방법을 알려주고, 반대쪽에선 도화지에 경찰차를 그려주며 멀티 수업을 해나갔다. 그러다 둘째가 엄마 무릎에 앉았다.  


“엄마, 여기 이렇게 색칠해 주세요”


아이의 요청에 나는 내가 혼자 색칠하기보다는 아이의 손에 색연필을 꼭 쥐게 하고 그 손을 내 손으로 감싸 쥐어 색칠을 해나갔다. 엄마의 단단한 손에 의지하며 움직일 때마다 색이 칠해지는 모습을 신기하고 재미있게 바라보던 둘째. 항상 엄마의 품과 엄마의 손을 형아와 공유해야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지금 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고 느껴졌다. 칠을 다하고 자동차에 아이 이름을 새겨줄 생각으로 아이에게 물었다.


“여기에 이름 적어보자, 어떤 이름 쓸까?”

엄마의 질문에 바로 자신의 이름 두 자를 또박또박 답하는 아이. 그렇게 아이의 이름을 쓰자, 아이는 또 형아 이름도 써달라고 했다. 그렇게 형아 이름을 쓰자, 아이는 또 고민을 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답이 돌아왔다.


“엄마, 엄마는 이름이 뭐예요?”

순간 아이와의 관계가 낯설게 느껴졌다. 태어나서 지금껏 나의 진짜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 지붕 아래 만 3년이란 동거 기간을 채울 때까지 말이다. 보통 관계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꽤나 늦은 통성명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이와 나의 관계에선 이름이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그저 나는 ‘엄. 마.’ 그 자체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이름이 갖는 의미도 분명 중요하지만, 엄마로 사는 것은 이름을 넘어서 존재감으로 충분히 전달된다. 아이에게 사랑과 따뜻함으로 전해주는 사람. 반대로 아이는 내 얼굴, 내 미소, 내 품, 내 손길, 내 마음, 내 뽀뽀를 갈망하며, 내 진짜 이름 석자만 빼고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해 준다.


나는 처음으로 내 이름 석자를 아이에게 또박또박 불러주고, 아이의 손을 함께 잡고 도화지에 적었다. 아이는 엄마 이름표 안에 감춰진 본명을 듣고는 해맑게 어눌한 발음으로 따라 말했다. 그 뒤로도 아이는 엄마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엄마의 이름을 더 자주 불러주었다. 마치 지난 시간을 만회하며 더 강하게 엄마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려는 듯이.


고마워, 아가.
네가 엄마에게 소중한 존재이듯,
엄마도 너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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