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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Feb 09. 2023

엄마, 지훈이네 집은 10억이래요!


아이들이 선물 받은 30가지 색연필을 통째로 들고 다니면서, 매일 색칠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스케치북이나 그림책에 그림을 그리다가도 성에 차지 않는지 이따금 책상이나 쇼파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어느 날은 엄마의 눈을 피해 창틀과 벽지에까지 알록달록 그림을 그려놓았다. 자기 전, 커튼 정리를 하다가 아이들이 만든 화려한 흔적에 나는 깜짝 놀랐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다스리기 위해 한숨을 크게 내쉬고, 아들 둘을 소환했다.


“누가 이랬어?”


아이들을 타이르면서도 막상 나는 이걸 어떻게 지워야 할지 막막해졌다.


“아, 집주인 아저씨가 싫어하실 거야. 이 집이 우리 것도 아닌데..”


아이들을 혼내다가 속상함에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순간 아이는 놀란 토끼눈이 되어 질문을 이어갔다.


“엄마, 이 집이 우리 집이 아니에요?”

“응, 우린 잠시 빌려 사는 거야! 필요에 따라 집을 살 수도 있고, 빌릴 수도 있어~”

“그럼 집주인 아저씨는 어디 살아요?”


아이는 생전 처음으로 자가와 전세라는 개념을 획득하곤, 혼란스러운 듯 질문을 퍼부었다. 한참 뒤에야 물티슈를 꺼내 엄마를 따라 열심히 창문을 닦아 냈다. 다행히 창문은 깨끗이 지워졌고, 벽지는 지우개로 열심히 닦아낸 결과 약간의 자국만 남기고 지울 수 있었다. 그 뒤로도 아이는 이따금씩 아직도 우리가 전세에 살고 있는 것인지 확인차 질문을 던졌다.


"엄마, 지훈이네 집은 10억이래요. 우리 집은 얼마예요?"


아이의 말에 나는 선뜻 대답하기 망설여졌다. 아이의 눈빛은 그것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불러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평소 라이벌처럼 매번 오늘은 지훈이에게 체스에서 몇 번 이기고 졌는지 브리핑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이런 답을 해주는 게 맞을까? 고민하면서도 나는 아이에게 집에 대한, 더 나아가 부에 대한 개념을 잘 심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기 전, 나는 내가 생각하는 집과 돈의 가치를 스캔해 봤다. 나이 서른여섯이 되고도 제대로 된 명품 하나 없는 건, 명품에 쓰인 이미지가 곧 내 이미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종종 흔들리긴 하지만) 소비에선 네이밍보다는 퀄리티나 실용성을 따지고 소유에 대한 기준이 타인보다는 자족하는 내면에 있는 거라고 믿고 있다.


뉴스에서 집값이 연일 떡상한다고 했던 지난 몇 년간, 나도 어서 그 대열에 올라타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을 심하게 느꼈다. 그럼에도 선택의 순간에서 늘 발을 멈췄다.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만큼 우리 부부의 기준에 적합한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무주택자로 우리는 수입을 상황에 맞게 관리하면서 언젠가 만날 우리 집을 찾는 중이다.


다시 돌아와, 나는 아이와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매매, 전세, 월세의 개념을 구분해 일러줬다. 집의 가치에 따라, 그리고 다양한 방법에 따라 돈이 드는 거라고 말이다. 우리 집은 일정 기간만 사는 집이라 그 친구의 사는 집에 비해서 적은 돈으로 충분히 빌릴 수 있었다고.


이 이야기를 하면서 못내 아이의 자존감에 스크래치를 준 게 아닌가 눈치를 살폈다. 필요에 따라 합리적으로 사는 거라 어렴풋이 이해한 아이는 곧 다른 주제로 넘어갔지만 내 마음 한편에 아이의 말이 남았다.


최근 읽게 된 <내 아이와 처음 시작하는 돈 이야기>란 책에서 저자 론 리버는 돈에 대한 대화는 곧 가치에 대한 대화라고 말한다. 돈이란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수록 아이에게 필요한 균형적인 시각과 가치관을 적립할 수 있다. 용돈은 참을성에 대한 문제로, 자선은 관대함의 문제로, 일은 인내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바라는 것과 필요한 것의 차이를 고려하여 협상하는 것은 검약이나 신중함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이 모든 대화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현실에 감사함을 가지고,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가치 있는 것에 돈을 현명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


스쳐 지나가는 대화였지만, 이를 통해 아이를 둘러싼 수많은 정보의 보호막 중 한 칸을 걷어낸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아이에게 숨기고 싶은, 약간은 부끄러운 주머니 사정을 공개하기 위해 나도 용기가 필요했다. 막상 아이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나니, 진짜 우리 집을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아이와 내가 행복한 공간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진정한 우리 집이겠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나는 한 가지를 명확히 깨달았다. 아이에게 꾸준히 타인의 기준에서 우리의 삶을 부유하고 가난하다고 논할 수 없다는 걸 일러줘야겠다고. 지금 이 상황에서 아이가 열등감을 느낀다면, 반대로 상황이 나아져 더 좋은 거처로 옮길 때 아이가 충분히 우월감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외부의 영향을 초월해 아이 내면이 단단하고 밝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열과 성을 다해 아이에게 너는 충분히 사랑스러운 존재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다고 새겨줄 것이다.


“가진 게 많다는 건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 보여줄 뿐,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말해주는 건 아니란다.”

<이웃집 백만장자 변하지 않는 부의 법칙>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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