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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nhyuk Oct 04. 2022

스툴

스툴 같은 사람

 스툴이 뭐예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사실 나도 가구를 배우기 전까진 스툴이 뭔지 몰랐던 것 같다. 누군가 앉을 곳이 없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옆 테이블의 스툴을 발견했다면, "저 '의자' 가져다 앉으세요."라고 말했을 거다.


 스툴은 등받이가 없는 의자다. 의자에서 등받이 부분을 지우고 전후좌우로 꾹 눌러 넓이를 조금 줄여보자. 그럼 스툴이 된다. 아래위로 눌러 키를 줄이면 화분을 올려놓을 수 있는 미니 스툴이 되고, 위아래로 잡아당겨 키를 늘리면 바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바스툴이 된다. 간단하게 생긴 만큼 여러 용도로 바뀔 수 있는 다재다능한 가구다. 


 공간을 꾸밀 때 뭔가 허전하고 텅 비어 심심해 보인다면 어딘가에 스툴을 살며시 놓아보자. 이 조그맣고 귀여운 물체가 새로운 리듬감을 더해 줄지도 모를 일이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나 귀여운 강아지처럼 단조로움을 없애고 리듬감을 불어넣는 게 스툴이라는 가구의 매력이니까.


 스툴은 어디든 놓일 수 있고 어디든 바라볼 수 있다. 좌판에 앉아 360도로 몸을 돌릴 수 있기에 이쪽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몸을 돌려 옆사람과, 뒷사람과 자유롭게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의자는 방향성을 가진다. 팔걸이와 등받이가 한 방향만을 바라보게 한다. 옆사람, 뒷사람과는 마주 보고 대화하기가 힘이 든다. 스툴은 자유롭고 의자는 경직되어 있다.


 스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느 곳에 가든 무난히 어울릴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재밌게 지내고, 주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대체로 부정적이었고 타인의 단점만 골라 찾아내는 희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람 만나기를 항상 어려워했다. 고등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선 하루 종일 부대끼며 지냈기에 어렵지 않게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지만, 서울살이와 함께 시작된 대학 생활은 그리 쉽지 않았다. 다들 가벼운 스툴에 앉아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웃고 떠드는데 나만 혼자 육중한 팔걸이의자를 질질 끌고 있었다. '드르륵드르륵'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다. 경쾌한 사람들을 쫓아다니는 내 모습이 참 안돼 보였을 것이다. 


 몇 년을 질질 끌고 다니다가 드디어, 나는 내가 스툴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외면해왔던 진실이었고 그 위에 불도장을 천천히 눌러 찍었다. '나 맞음.' 

 그즈음이 공방을 차리기로 결심했던 시기였고, 나는 의자를 들고 무리에서 떨어져 구석진 곳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낮에는 창밖 풍경이 보였고 밤에는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조용한 작업실'에 들어앉아 가구를 만들던 지난 4년은 창밖 풍경에 집중했던 시간이었던 듯하다. 세상과 떨어져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던 시간. '조용한' 시간. 더 이상 스툴을 동경하지 않게 되었고 이리저리 뛰느라 지쳤던 다리도 모두 회복했다. 창밖은 어둑해졌고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젠 나를 하나씩 살펴보고 내 모습에 꼭 맞는 의자를 찾는 작업을 시작해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쓰는 것이 그 '작업'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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