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사적인 작업이 이루어지는 가구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읽고, 일기를 쓰고, 공부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쓴다. 손으로 무언가를 공들여하는 아날로그적 공간이기에 나 자신과 대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책상에서 즐거운 몰입의 경험을 해본 기억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한밤 중 혼자 책을 읽을 때의 고요함. 책장을 넘길 때 나는 기분 좋은 소리. 활자에 온전히 집중한 맑은 정신. 글씨를 쓸 때 나는 사각 소리. 필기구을 잡아 쥐는 느낌. 종이의 까슬한 감촉을 느낄 수 있는 고요하고 충만한 시간 말이다.
하지만 집집마다 컴퓨터가 보급되며 이야기가 달라졌다. 읽고 쓰는 행위는 종이와 연필이 아닌 모니터와 키보드가 대신했다. 눈과 귀를 자극하는 수많은 영상 매체와 게임, 음악이 세이렌처럼 사람들을 홀렸다. 컴퓨터가 책상 한 가운데를 차지했고, 종이와 연필은 구석으로 밀려났다. 컴퓨터를 감당하기 위해 책상은 점점 넓어졌으며 넓어진 공간엔 이런저런 잡다한 물건이 놓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나도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를 책상에 놓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 공방을 창업한 지금까지 내 책상 위엔 항상 컴퓨터가 있었다.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시청각 매체가 주는 자극엔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학교를 마친 뒤엔 밤이 늦을 때까지 게임을 하거나 웹서핑을 했다. 성인이 된 후엔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눈과 정신은 갉히는 듯했고 왠지 모르게 점점 멍청해지는 것 같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어두컴컴한 단칸방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나오곤 한다. 책 한 권 놓기도 빠듯해 보이는 앉은뱅이책상에서 흐릿한 전등을 켜고 앉아 글을 읽는 모습을 보노라면, 가난한 주인공에겐 미안하지만 '와 분위기 좋다!'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저 책상에서라면 책 읽기와 글쓰기에 완벽히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오로지 책과 연필만 있는 책상. 책상 위에 잡다한 무언가가 없어 오롯이 책만 볼 수 있고, 어두운 방안에 전등 하나만 켜있기에 주변을 볼 일 없이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축복받은 시대다. 인터넷을 통해 무엇이든 보고 즐길 수 있다. 비약적인 기술 발전으로 가없이 생산하고 손쉽게 소유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보 범람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를 겪으며, 너무나 많은 소유로 인해 소유물에 '깔려 산다'고 고백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많은 물건을 소유하려 한다. 생산력이 늘어난 만큼 책상은 넓어졌고 많은 물건이 그 위를 채웠다. 소유물이 소유자를 충만하게 하기 보다는 불안하고 정신없게 만드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책상이 아닐까. 내 방 안에도, 내 마음 안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