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한부모 가정에서 큰 애들은 알게 모르게 티가 나는 거 같아.”
괜찮은 척했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충격받고 지금까지도 그 언니를 보면 한 번씩 생각나서 조심히 행동하게 하는 말이다. 회사 동기 언니와 대화를 나누다 나온 말이었는데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내가 이혼가정에서 자란 것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떤 대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많이 친하다고 생각했고 나랑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금이 쳐지는 말이었다. 참 악의 없는 편견이었다. 이혼가정에서 자란 게 그 사람의 탓이 아닌데... 사는 동안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얼마나 많이 겪어봤다고 저렇게 말하는 걸까. 이 말을 듣고 나는 이혼가정에서 엄마 혼자 나를 키웠노라 돌려 이야기하니 ‘아차’하는 표정으로 난감해했다.
옛날 드라마에 보면 신생아 때 아이가 바뀌어 부자인 가정에서 사이좋은 부모님에게서 자란 아이와 폭력적인 아버지와 억척같은 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아이 차이를 표현할 때 부잣집에서 자란 아이는 천진하고 꼬이지 않고 당당한 성격의 어른으로 성장하고, 가난한 집에서 자란 아이는 지지리 궁상에 다 내어주며 남자친구 뒷바라지하다가 배신당할 때까지도 미련하게 구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걸로 표현되곤 했다.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게 이러한 것이니 평균적으로 정말이기에 이리 묘사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꼬인 게 많은 어른으로 자랄까 봐 겁이 났다. 학교 다닐 때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항상 조마조마했다. 그 영향이 제일 크게 나타난 건 연애를 할 때였다.
연애를 하면 동등한 위치가 아닌 나는 을이었다. 자발적 을이었다. 너무 좋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연애를 하니 집안 사정에 대해 서로 알게 되면서 더 주눅이 들었다. 왜 내가 만난 애들은 하나같이 부모님이 다 계시고 사이가 좋아 보이는지... 남자친구인데 비교대상이 되었다. 싸움을 하게 되면 집에 돌아와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은 아닌지 돌아보기 바빴고, 화를 내고나선 금방 나를 떠날까 봐 두려운 것이 사랑을 못 받아 애정결핍이 있어 그런가 싶었다. 원래가 연애를 하면 이렇게나 다들 멍청해지고 미숙한 것인지, 내가 이렇게 커버린 것인지 혼란이 올 때면 항상 우울해지고, 연애가 하기 싫어졌다. 사랑받을 때도 언제 돌아설지 몰라 두려워하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지치기도 했다.
혼자서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더 편하고 좋은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긴 연애는 하지 못했다. 애정에 구걸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마음이 회사 사람들에게 들었으면 좋았으려 만 나는 연애상대에게 들었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생각이 얼마나 아까운 시간을 보내게 만드는 생각이었는지 안다. 지금 나는 연애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모든 이에게 “국이 되든 밥이 되든 하루라도 젊을 때 더 많이 연애해!”라고 말해준다. 세상에 태어나 많은 것들이 나를 성장시킨다. 그중 연애의 비중도 컸다. 20대 때의 나의 연애는, 미성숙한 시기를 벗어나고 있던 시기였기에 ‘나’라는 인간조차도 모르는데 남을 사랑하려고 하니 더 어려웠다.
어떻게 컸냐는 것은 연애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조건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내가 어떤 환경에서 컸냐로 정해지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서 상처를 받고 싶지 않다는 것도 참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연애는 아무리 좋아 죽겠어도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너무 사랑해서도 상처를 줄 수 있다.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배려하며 아껴주고 맞춰지냐의 영역인 것 같다. 결혼은 심화과정인 것 같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거의 나에게도 말해주고 오고 싶다. “연애해! 주눅 들지 마! 쟤랑 안 맞나 보다 생각해야지! 네가 잘못된 게 아니야!! 알겠어?”
연애를 해보니 알게 된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남녀 사이는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연애 때 알게 되는 이미지가 정말 다르다는 것과 나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고, 연애관에 대한 기준점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또한 누구보다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예의도 배우고, 내가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은 연인이 경험하게 해 준다. 부모님과 친구들과는 또 다른 영역의 있는 것이다.
연애를 하며 초기에는 많이 어둡고, 찌질했지만 점점 나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봐주고 사랑해 준 사람 덕분에 나도 나를 더욱 믿고 사랑하게 된 부분이 크다.
연애에서는 확실히 알았다. 내가 이혼가정에서 컸다는 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에 아~~무 상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