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혼가정의 딸입니다.

주위사람

by 아샤


세상에 태어난다는 건 ‘평생 주위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야 해’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위사람들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성장하고, 망가지고, 변화한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란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내가 자란 환경 하나로 나를 단정 지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부정하고 싶었다.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하구나...라고 생각하며.


“저도 이혼가정에서 커서 제가 이런 사람인 건지 모르겠어요. 저도 알아가는 중이에요.”라고 말하고 싶다. 덧붙여도 된다면... “저는 주위사람들의 다정함이 좀 필요해요.”까지.


이혼가정에서 자라서 저렇다, 이혼가정에서 자라서 저럴 줄 알았다. 같은 프레임은 빼고 나라는 사람을 봐줬으면 좋겠다고 항상 바란다. 그 바람이 항상 나를 무너트리는 걸 알면서도 반복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런가. 나는 나한테 더 기대를 하며 살아야 할 텐데 여전히 주위사람들에게도 기대를 한다. 나를 색안경 끼고 바라보지 않았으면, 나에게 조금만 더 다정하게 대해줬으면. 그렇다면 난 더 큰 다정함을 줄 수 있는데.. 하고.

살아보니 나라는 사람은 오지랖이 있고, 장난기가 많고, 조금 더 다정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착한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눈치 보다 보니 이렇게 된 건지 습관 같은 것이 되었다. 오지랖은 천성인 거 같고.


예전엔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고, 나와 친하게 지냈으면 했다. 지금은 알아서 거리를 맞춘다. 이 정도 거리가 이 사람하고 좋은 모습만 보겠구나. 하고 잘 재보고 다가가거나 멀어진다. 왜 예전엔 그토록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고, 사이가 좋고 싶었던 걸까? 어려서 그런 걸까? 아니면 사랑이 필요했던 걸까?

거리를 잘 맞추며 살아가려고 하지만 주위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금은 창피해도, 많이 어려워도 입 밖으로 내뱉으려고 한다.

“나는 지금 다정한 말이 필요해.” 그리고 이 말은 ‘너에게 다정한 사람이고 싶어.’이기도 하다.

입 밖으로 내뱉으니 더 나았다. 그래도 여전히 속으로 삼키는 말들이 많고,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어야지 생각한다. 내가 주위사람들에게 영향을 받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주위사람을 영향을 주고 있을 테니. 우울함보다는 활기참으로,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을 주려고 한다.


이 글을 읽을 또 다른 주위사람일 당신에게도 줄 수 있으면 다정함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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