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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도 신랑 표 김밥

그래도, 든든한 독박 육아

도우미 이모님이 가고, 정신없이 한 주를 보내고 있었다. 처음 혼자 아들을 돌보느라 점심을 굶는 게 대부분이었다. 신랑은 100일까지는 잘 먹어야 한다며 먹으라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빼빼로를 먹으며 끼니를 때우고 있었는데, 하루는 신랑이 물었다.


"또, 과자 먹었지?"

"어떻게 알았어?"

"cctv 봤지. 점심 챙겨 먹으라니까. 근데, 너무 바빠 보이긴 하드라"


  작년에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산후도우미가 신생아를 학대한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계시는 동안 cctv를 설치했다.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아들을 돌보고 내가 자는 동안 신랑은 틈틈이 cctv를 보곤 했었다.


이모님이 떠나고 처음에는 깜박하고 치우지 못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신랑은 cctv를 치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cctv가 말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 나와 아들에게 말을 걸기도 시작했다. cctv를 늦게 치운 덕에 신랑은 자신이 없는 동안 독박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를 시청각 교육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매일 빼빼로로 아침, 점심을 때운다는 사실과 점심을 앉아서 먹기 힘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요리를 하다가 울면 달려가야 하고 아들을 분유를 먹이고 트림 시키고 안아주고 나면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리며, 결국 빼빼로를 먹으면서, 아가를 안아주는 모습을 cctv를 통해서 보곤 했다.


"매일 빼빼로만 먹음, 안되는데."

"바로 먹을 수 있는 게 있어야 먹지. 김밥 먹음 되겠다. 그럼 퇴근하는 길에 김밥 좀 사 와, 다음날, 먹게"


  그다음 날 신랑은 김밥은 아침에 싸놓고 먹어야 한다며, 양손 가득 김밥 재료를 사 가지고 퇴근했다. 신랑이 사 온 재료를 보는 순간 나는 신랑이 김밥을 처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 꼬마김밥 쌀 거야? 왠, 조미김?"

"꼬마김밥? 아니, 그냥 김밥 쌀 건데, 조미김은 참기름이 발라졌으니, 안 발라도 되잖아"


다행히 집에 김밥김이 있어서, 신랑은 처음으로 김밥 만드는 데 도전했다. 사실 나도 김밥을 먹어만 봤지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신랑이 김밥을 만드는걸 아들을 안고 구경을 했다.


신랑이 김밥 재료를 만드는 동안 아들은 내 어깨에서 아빠가 김밥 만드는 걸 보느라 신이 나있었다. 여기저기 맛있는 냄새와 다양한 색색의 재료들을 보며 나와 아들은 침을 흘리며 옆에서 지켜봤다. 나름 김밥 재료가 완성되고, 첫 김밥은 옆구리가 다 터지고 잘 말리지 않아 풀렸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신랑이 나에게 첫 김밥을 먹여주는 동안 아들은 자신도 먹으려는지 계속 입을 벌렸다.


"아직은 안돼, 크면 같이 먹자"


그 이후로 신랑은 김밥을 2줄을 더 만들었다. 우리가 먹는 동안, 바운서에 앉아있는 아들은 입을 계속 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기만 안 준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옹알거렸다. 신랑은 재료를 냉장고에 넣으면서,


"내일 아침에 김밥 싸놓고 갈 테니, 점심 챙겨 먹어"


그렇게 신랑은 아침에 김밥을 만들어 놓고 나가기 시작했다. 점심을 김밥으로 먹은 지는 이제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가끔 바빠서 못해줄 때도 있지만, 매일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점심으로 김밥을 먹으면서 든든하게 독박 육아를 하고 있다.


오늘도, 잘 먹을게요♡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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