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쓰고 보면, 결국엔 다시 쓰게 된다.
늘 마음처럼 안 되는 놀라운 회사문서
우리회사 새내기 팀원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곤혹스러워하던 게 문서쓰기였다.
"그게 말로 하면 쉬운데, 문서로 쓰려고 하니까 뭐부터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많은 현황자료를 어떻게 1장짜리 보고용 문서로 만들 수 있죠...?"
"팀장님, 요청하신 자료 혹시 기한 조금만 더 주실 수 있나요. 아직 좀 더 손봐야 해서요."
일 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왜 써도 써도 문서는 늘지 않죠." 였다.
어렵지 암만. 도통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잔뜩 참고자료를 뒤져서 창을 10개씩 열어두고서도 막상 글을 쓰려고 보면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몰라, 커서는 늘 같은 자리.
"언제까지 될 거 같아? 아직 멀었어요?"
팀장이 한 마디 재촉이라도 하게 되면, 아이코, 쿵 떨어지는 게 내 마음인지 심장인지 모르겠다.
한글을 익히고, 한평생 써온 말이고 글인데, 왜 보고용 문서 앞에만 오면 이렇게 작아지는 걸까.
문서를 잘 쓰기 위해선 일단 많이 봐 둬야 한다.
새내기 팀원이 오면 가장 먼저 업무를 익힐 문서를 준다.
잘 모를 땐 많이 보고, 어설프게나마 익숙해지는 게 좋다.
그러나 아쉽게도, 새내기에게 "자료 보면서 업무 숙지하고 있으라는" 말은,
일단 시간 때우기로 들리기 십상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업무를 숙지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으면 그 시간들을 어쩌지 못하고 무용하게 보낼 수밖에.
상사가 업무숙지를 하라고 문서 뭉탱이를 던져주면(물론 파일로 줄 테지만),
일단 한 번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 꼼꼼히 말고 대강 스윽 본다. 숲을 보고 나무를 봐야지, 디테일하게 나무 하나하나 보다간 숲 한가운데서 길을 잃을 테니.
한번 본다고 업무숙지가 다 될 리 없을 테니 그냥 마음 편히 읽고 또 읽길. 낯설기 그지없던 단어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면, 이제 내용을 본격적으로 파악해보자. 우리는 이걸 맥락을 읽힌다고 한다.
모든 문서엔 순서가 있다.
왜 했는지(배경 및 추진근거), 그래서 지금 뭘 하고 있는지(추진현황, 추진과정), 이제 뭘 해야 하는지(향후 계획)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눠서 내용을 추론해보고 구조화해보자.
그 많은 업무용 파일도 결국엔 모두 이 순서에 따라 정리되니, 시점을 잘 정리하는 것도 팁이다.
한 달쯤 업무숙지 과정이 끝나고, (이쯤 되면 사내에서 쓰는 언어들은 익숙해졌을텨)
본격적으로 업무에 투입되면 이제부터 문서와의 전쟁이다.
으레 그렇듯 상사들은, 어른들은 핵심만 쭉쭉 적힌 자료들을 보길 원한다.
그 길고 긴 내용들을 모두 읊을 시간을 주지도 않거니와, 보고서 2장이 넘어가면 "요약해서 가져오라"고 한다.
이런. 아니 할말이 얼마나 많은데 그 많은걸 한 장에 담아요? (라고 생각해봤자...)
그럼 한글을 열고 이제 쓸 태세를 갖추지만, 한 줄 쓰기도 어렵다. 문장을 좔좔 나열하면 안 되니, 머릿속에서 개조식으로 쓰라고 눈치 주니 문장형으로 쓰다가 어미만 슬쩍 바꿨더니...
"00씨. 학교 다닐 때 개조식 안 배웠어요? 무슨 문장이 이래? 이거 읽어봤어요? 무슨 말인 거 같아 이게?"
팀장은 만만치 않다. 내용은 고사하고, 문장 서식에서 이미 아웃이다. 팀장은 이게 보고용_v1.hwp인 줄 알고 있겠지만.. 아니요. 이거 사실은 작성용 v3.hwp까지 쓰고 파일명 바꿔서 제출한 겁니다 팀장님, 어흑.
일단 쓰면 된다고 누가 그랬나. 시작이 반이라며. 일단 쓰면 쓰게 된다더니!! 팀장이 아니나잖아요.
이건 글짓기, 그러니까 멋들어진 글짓기용이 아니니 무조건 쓰고 보면 안 된다.
보고서는 설득용 문서이기에,
누구에게(상사), 무엇을(추진과업), 어떻게(추진방법), 어필할 것인지가 담겨야 한다.
그리고 그 상사가, 팀장인지 과장인지 본부장인지에 따라서 쓰일 내용도 달라져야 한다.
생각해보라. 상대는 이 추진과업을 알고 있을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설령 알고있다한들 담당자처럼 속속들이 아는 것이 아니다.
새내기들이 간과하기 쉬운 게, 보고용 문서를 작성지 관점에서 쓴다는 거다. 보는 이도 나만큼 알고 있다는 착각을 거둬라. 모른다.
전후 상황 없이 냅따 지금 현재만 써놓으면, 상사는 당황한다.
그리고 또 하나, 본인만의 언어습관을 벗어나자!!
친구들과 쓰는 익숙한 단어 말고 정제된 언어를 익혀야 한다. 업무 숙지할 때 놓치기 쉬운 건데, 사내에서, 그 분야에서 통용하는 언어를 써야 한다.
누구나 아! 하면 어! 하는 그런 단어를 쓰자.
생각없이 쓰다보면 버전10까지 쓰게 되는 게 보고용 문서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약간의 요령을 익히고, 문서쓰는 훈련을 하면 된다. 진짜 된다. 그렇게 여러해 팀원들에게 훈련해왔으니 믿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