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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수박 Mar 16. 2022

상대방의 언어로 쓰면 맥락이 생긴다

두 번 쓰면 두 번 좋아지는 만고의 진리

어느 책에선가 그랬다. 직장인에게 필요한 최고의 무기는 글쓰기라고, 뭐가됐든 많이 읽고(검토하고), 생각보다 더 많이 쓰게 될 터이니(소통의 90%은 문서이니) 사회초년생을 포함해 입사 3년 차 미만의 실무진들은 글쓰기 훈련을 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이 대략 "이렇게 말해도 와닿지 않으면 안 읽고 안 쓸걸 알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는 10%만이라도 쓰기 바란다, 뭐든."  이런 뉘앙스였다.


아... 저 두줄의 문장 뒤에 숨겨진 숱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머리를 쥐어뜯고, 뜯어봐도 문서를 제대로 쓸 줄 몰라 괴로워하던 지난날의 나여.  회사는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고,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지만, 사수에게 "그래서 문서는 어떻게 써야되는 데요?"라고 물어볼 순 없으니, 일단 또 머리를 쥐어뜯으며 문서와 씨름하게 되는 거다.


# 잘 쓰여진 문서란 무엇일까

원론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회사에서 쓰는 문서는 멋드러진 글솜씨를 뽐내는 것이 아니다. 주로 담당업무의 기획안, 보고서(추진현황, 결과보고), 제안서 등이 대다수일터. 이런 문서의 핵심은 설득이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설득하고,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리고 내지는 새로운 상품을 제안하며 솔깃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다. 다짜고짜 "잘하고 있습니다", "이 상품 진짜 좋은데"로 끝낼 수 없으니, '어떻게' 잘하고 있고, '어떤 점이' 좋은지를  상대방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사회초년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 모를 문서를 쓰는 것이다. 이 문서의 쓰임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사수가 써보라고 하니, 이해되지 않은 채 무조건 쓰다 보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말들이 가득한 문서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도 그렇지 않은가. 같은 주제라도 해당 이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말할 때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할 때 쓰는 어가 달라진다. 글도 다르지 않다. 누가 읽을 것인가가 첫 번째이다.


#상대방의 언어로 말하면, 맥락이 생긴다. 

대화할 때 상대방이 있는 것처럼, 글을 쓸 때도 읽는 화자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자. 신규사업의 제안서를 쓴다고 생각하면, 핵심 아이디어(메시지)를 누구에게 설득할 것인가? 이 아이디어는 오직 당사자만 알고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상대가 나만큼 알고 있다는 착각은 제발 접어둬야 한다. 신규 기획안은 특히 생소하고 낯설기 때문에 생각보다 더 친절해야 한다. 내용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맥락을 파악되기 위해선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충실해야 한다. 


아이디어를 기획으로 확장하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상상이 필요하다. 누가(대상), 언제(운영시기), 어디서(온, 오프라인 플랫폼), 무엇을(핵심 킬러 콘텐츠), 어떻게(추진방법), 왜(추진배경) 해야 하는지가 잘 드러나야 한다. 신규 기획안을 쓸 때 내가 가장 잘 쓰는 방법은 해당 장면을 상상하면서 그림그리듯 두어 줄의 문장으로 써보는 것이다. 육하원칙은 이때도 마법의 도구다.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글은 간결하게 써야 한다. 머릿속 가득 상상했다고 해서, 그걸 모두 문서에 드러낼 필요가 없다. 기억하자 이 문서는 실행계획안이 아니라 신규사업 제안서다. 모르는 사람에게 재밌는 이야기라고 해서 1시간 붙잡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일단 구미 당기게 1분짜리 예고편을 보여준다고 생각해보자. 상대가 들을 준비가 안됐는데 너무 깊게 들어간 이야기는 오히려 독이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기획안의 내용이 구색을 갖췄다면 이제는 써보자. 처음 보는 상대(화자)를 앞에 앉혀두고,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하고. 그가  이해하기 쉽도록 단어들을 계속 고쳐나가는 거다. 내 언어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 평소에 많이 쓰는 말이 정답은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정제된 단어로 바꾸고 또 바꿔보자.  유사어는 포털사이트에 검색만 해도 수두룩하게 나온다. 특히 어려운 한자어나 유행어는 반드시 다른 말로 고치는 게 좋다. 상대는 여러분과 같은 또래가 아니다. 꼭 써야 하는 말이라면 밑에 *참고를 달아주는 친절함을 베풀어보자.  


#두 번 쓰면, 두 번 좋아진다

문서는 만지면 만질수록 좋아진다. 그것은 진리다. 아이디어를 정리하며 내 입장에서 한 번 쓰고, 상대를 생각하며 두 번째 문서를 고친 다음에 해야 할 일은 소리 내 읽어보는 거다. 상대는 늘 우리에게 우호적이지도, 많은 시간을 내어주지도 않는다.  상대가 흐름을 타고 한눈에 슥- 문서를 읽히려면 소리 내 읽었을 때 걸리는 말들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꼭 문서를 쓴 다음에 입말로 읽어봐야 한다. 쓸 때는 모르지만, 소리 내 읽으면 걸리는 말들이 꼭 있으니까. 걸리는 단어는 대체 단어를 생각해 고치면 좋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화자를 설정하고, 문서의 매무새를 다듬다 보면 쓰는 요령이 생긴다. 문서 쓰는 노하우는 이렇듯 하나둘씩 쌓이는 요령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서가 최종 컨펌이 났다면, 한 가지 일이 더 남았다.


문서 초안과 최종 통과한 문서를 반드시 비교해보자. 어떤 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한 번 더 파악해두면 정말 많이 도움이 된다. 나 역시 요즘에도 종종 하는 방법인데, 나쁜 습관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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