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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수박 Mar 21. 2022

보도자료 필사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

첫 직장이 신문기자였다. 학교를 갓 졸업해서 아무것도 몰라요가 통하던 이십대 풋내기는 신문사에 출근하여 당당하게,

"기사 어떻게 써요?" 라고 물었더랬지.


까마득한데 그때가 종종 기억나는 건,

첫 직장에서 익힌 기술들이 많아서였다.


글을 쓰는 법을 배우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잘 읽혀야 좋은 글임을 알았고, 어려울수록 쉽게 써야 함을 알았다. 말을 잘하는 법은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가능함을, 좋은 질문이 곧 좋은 답변이 되는 것도 그때 배웠다. 


그렇게 익히고 체화된 기술들이 내 언어가 됐 문장이 됐다.



신문사에서 첫 달은 열심히 중앙부처 보도자료를 육하원칙에 의해 재배열하는 거였다. 문장에 무엇을 담을지,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익히기 위해 중앙부처 보도자료를 열심히 보고 쓰고 했다.


생경한 단어들이 줄어들 때까지, 내가 안다고 자부했던 단어의 뜻이 잘못된 걸 계속해서 깨우쳤다. 군더더기 없는 글을 어떻게 쓰는지 각 부처별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일상어가 어떻게 다듬어지고 대체어를 뭘 써야 하는지 꽤나 열심히 익혔다. 어설프게 안다고 지레짐작하는 걸 경계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곤, 좋아하는 시사주간지를 열심히 필사했다. 단순 스트레이트 말고 심층기사는 맥락이 있었고 앞뒤 내용의 서사를 어떻게 함축하고, 선택하여 표현하는지 열심히 쓰고 또 썼다. 그러면서 질끈 묶은 머리처럼 단단하고 팽팽한 글의 힘을 배웠다.


사실 그땐 좋아하는 기자 글이니 필사하는 것도 재밌고, 연속된 시리즈 기사를 해체해보고 내 방식대로 재배열해보는 것도 즐거웠다. 놀이처럼 즐긴 덕분에 몸으로, 감각으로 익힌 거겠지.


그러다가 두 번째 직장에서 문화기획을 하며 알게 됐다. 글쓰기가 기자들만 필요한 게 아니잖아? 직장인의 언어는 곧 문장 이어야 하고 설득은 그럴싸한 제안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요긴하게 그때 배운 것들을 써먹었다. 돌아보니 그렇다. 종종, 어떻게 문서를 빨리 쓰는데도 완성도가 있냐고 하는데, 머릿속에 문장을 구조화해놓고 쓰는 훈련 덕분이다.


뭐든 쓰려면 알아야 쓰고, 생각하고 써야 한다.


처음엔 홍보담당 동료에게만 보도자료 필사를 권했지만, 나중엔 신입직원들에게 시간이 나는 대로 중앙부처 보도자료를 익히고 써보라고 한다. 익숙해지면 낯설다는 불안이 덜어지고, 아는 단어가 하나둘 늘어나야 쓰는 맛도 생기니까.




모방은 언제나 옳다.


사내문서 쓸 때 제일 좋은 건 참고하는 거다.


누가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차장, 팀장, 계장 보고문서들을 차곡차곡 저장해 두고 어떻게 썼는지 하나씩 뜯어보며 내 걸로 바꿔야 한다.


이 정도 노력도 안 하면 안 된다. 겨우 날짜 정도 바꿔서 베껴 쓰지 말고(그럼 문서는 제자리걸음이다), 어디에 뭘 썼는지 구조와 흐름을 파악하고 내용은 일단 거둬보자. 그리고 내가 쓴 문서랑 비교해야 한다.


내가 약한 게 글의 내용을 쓰는 건지(기획력 미흡), 문서 가독성이 떨어지게 문서 편집을 못하는 건지 그걸 파악해야 개선할 수 있다.


문서 편집이 문제라면 금방 익힐 수 있다. 이건 기술의 문제이고. 기획력이 문제라면 사고하고 생각을 확장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기획에서 그치고 실행해본 경험이 적으면 나무는 봐도 숲을 가늠하기 어려워한다.


내가 부족한 점을 보완하자. 그리고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자. 글은 익혀두면 직장인 최고의 무기가 된다.  


보고문서는 기본적으로 3단계 구조화가 필요하다. 추진배경 > 추진내용(진행상황) > 추진계획(향후 계획)  순으로 정리하는 훈련을 하자. 달리 말하면, 왜 했고 뭐 하고 있는지 앞으로 뭐가 남았는지 이렇게 세 문장이 기본이다. 거기에 살을 붙여 나가야 한다.


그리고,  보고서 다섯 장보다 힘든 게 한 장 보고서이다. 늘리기는 쉬어도 줄이는 게 세상 어렵다. 쉽게 잘 쓰는 사람은, 정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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