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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종일 Oct 22. 2023

13. 홀로 걷다

베트남과 연애할 수 있을까

걷고 싶은 도시, 사이공


호텔로 들어와 씻고 아들과 체스를 한 판 두었다. 아들은 4수 만에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방과 후 교실에서 배운 수를 알려 주었다. 체스에서 가장 중요한 퀸을 빠르게 움직이는 방법이었다. 나는 체스보다는 장기 쪽이었기 때문에 아들과 실력차가 크지 않았다. 사실 그 편이 낫다. 10판을 하면 아들이 최소 3판은 이길 수 있어야 아들이 흥미를 잃지 않는다. 아들은 아빠에게 장기를 한 판도 이길 수 없기에 이제는 더 이상 아빠에게 장기 두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체스 한 판을 두고 잘 준비를 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에게 말했다. 


"나 혼자 나갔다 올게요. 부이비엔 거리 쪽으로 한 번 보고 올라요."

"쁘이삐엔. 쁘이삐엔은 어떤가 모르겠다. 그래도 혼자서는 조심해라."

"네 제가 정탐하고 같이 갈만한 곳이 있는가 보고 올게요. 일찍 주무세요."


아버지는 주요 관광지들을 본인만의 발음으로 말했다. 나름의 개그 욕심이자 스스로 흥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평소 같으면 나도 데려가라고 할 아들도 피곤했는지 먼저 자겠다고 이불을 덮었다.  


호텔에서 홀로 나왔다. 나는 특별한 목적지 없이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 걷다 보면 느껴지는 생경함이 좋다. 다음 블록에 도달했을 때 어떤 가게가 있을지 궁금하다.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고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을지 곰곰이 생각한다. 간판을 유심히 본다. 사람들이 많은 가게에는 그냥 한 번 들어가 본다. 그러다 뭔지도 모르는 음식을 주문해 먹어 보기도 한다.


신혼시절 아내와 둘이 홍콩 여행을 갔을 때였다. 홍콩 전역을 감상할 수 있는 빅토리아 피크에서 지도도 보지 않고 무작정 걷다가 배가 고팠다. 길 가다 나오는 사람이 없는 조그만 식당에 들어갔다.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였다. 메뉴도 마음 가는 대로 하나시켰다. 음식이 나오고 나니 고수와 생양파, 약간의 고기가 향신료 강한 소스에 버무려진 샌드위치였다. 한국 사람의 1%만 좋아할 샌드위치였다. 나는 '이 샌드위치 특이하고 맛있다'라고 주문을 외우며 끝까지 먹었고, 아내는 한 입 먹더니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내는 아직까지도 종종 그때 이야기를 꺼낸다. 그 샌드위치를 먹은 나를 특이하게 여긴다. 내가 봐도 유별나긴 하다. 그만큼 나는 여행 중 만나는 새로움이 좋다.


홀로 걷는 호치민의 밤거리는 흥미로웠다. 골목마다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어떤 골목은 술집이 밀집된 강남의 뒷골목 같다가 바로 옆 골목은 해외 브랜드 매장들이 가득하다. 대만 스타일 밀크티를 파는 세련된 가게 옆엔 노상에서 파는 쌀국수 수레가 있다. 유현준 건축가의 말에 의하면 '걷고 싶은 거리'는 보행자에게 얼마나 많은 이벤트가 일어나는지로 결정된다고 한다. 아무리 걸어도 비슷한 풍경이 반복되는가, 아니면 예상치 못한 변화무쌍함이 시선을 사로잡는가다. 그 기준에 의하면 호치민은 걷고 싶은 도시임은 분명했다. 

호치민의 밤 골목. 같은 풍경은 하나도 없다.



베트남과 연애할 수 있을까


길을 걷다 보니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대형 음식점이든 작은 옷가게든 상관없이 대부분의 매장에 그곳의 치안을 담당하는 듯한 사람이 있었다. 가게의 규모에 따라 그럴싸한 유니폼을 갖춰 입은 보안요원도 있었고, 흉내만 낸 사람이 가게 앞에 어영부영 앉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 호치민의 치안 수준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람이 많은 곳은 안전하다고 하지만 자기 가게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하고, 전담자를 고용할 만큼 안전하지 않구나 싶었다.


깔끔해 보이는 한 마트에 들어가서 구경하려는데 그곳 역시 입구에서 보안 요원이 지키고 있었다. 보안 요원은 가게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한쪽에 마련된 캐비닛에 가방을 넣고 들어가도록 시켰다. 캐비닛 위에는 물건을 훔쳐간 사람의 CCTV 캡처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처음에 가게에 들어올 때는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필요한 물건을 사가고 싶었다. 그런데 가방을 캐비닛에 넣어두고 나니 오히려 내 가방의 안전이 불안했다. 물건을 만져 보는 것도 도둑으로 의심을 사지는 않을까 싶었다. 나는 그 가게에서 빨리 나갈 수밖에 없었다. 새삼 '안전에 대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얼마나 큰 것인지 체감했다. 사회적 신뢰가 거래비용을 낮춘다는 게 이 말이구나 싶었다. 


한국의 치안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다. 물론 더 나아져야 할 부분이 많다. 최근의 묻지 마 흉기난동 사건이나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소식을 들을 때면 우리도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안전감은 세계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높은 것은 사실이다. 베트남의 시민들은 언제쯤 일상적 안전감을 공유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걸었다. 


베트남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낙관하는 쪽과 한계가 있다는 쪽의 가장 큰 갭이 바로 이 부분인 것 같다. 베트남은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극복할 수 있을까? 1986년 도이모이 정책 이후 시장경제를 적극 도입했다고는 하나 공산당 1당 체제의 한계는 여전한 것 아닌가? 정직과 질서와 같은 시민의식이 자리 잡는 것은 요원하지 않나? 언제쯤 베트남 사람과 믿고 동업할 수 있을까? 같은 말들이 많다. 

   

아마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베트남은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회 시스템이 바뀌려면 시행착오와 숙성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자본은 이미 베트남에 큰 투자를 해왔지만, 서구의 자본은 좀 더 큰 사회적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적극적인 투자를 할 거라고도 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베트남 탐구를 1년 넘게 계속해 온 아버지의 자료 속에 있다. 아버지는 아들과 손주가 혹시나 미래의 베트남에서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하여 연구를 거듭해 준 전문가가 되어버렸다. 거시적인 현황은 전문가들의 영역이니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한 개인의 입장에서 베트남에 관심을 갖는 것은 추천할만한 일일까? 과연 나는 베트남과 더 깊은 인연을 이어가도 될까? 아직 믿을 수 없는 저 신뢰 국가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믿을만한 사람이어야 연애도하고 결혼도 하는 것일 텐데. 내가 베트남의 사회적 신뢰 지수가 올라가고 있는지 측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기관도 정확하게 하기 어렵다. 그러면 나는 베트남과 데이트만 할지, 연애를 할지, 결혼을 할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사이공의 밤거리를 걸으며 매장들을 지키고 있는 보안요원을 보며 생각했다. 만약 가게마다 꼭 필요했던 보안요원이 점점 줄어든다면? 어쩌면 그거야말로 사회적 신뢰가 올라가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은행이나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건물 정도를 제외하면 보안 요원이 필요하지 않다. 그만큼 사회적 신뢰가 높은 것이다. 


아버지의 소개로 나는 베트남과 첫 소개팅을 했다. 어쩌면 이번 삼부자 여행 이후에도 몇 번 더 데이트를 할 것이다. 다음에 베트남에 왔을 때, 조금씩이라도 사설 보안요원이 줄어드는 추세가 느껴진다면? 좋은 쪽으로 변하는 베트남의 미래에 배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결혼은 먼 일이지만 연애를 시작할 신호 정도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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