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과 계기
“그래? 잘했다”
효리 언니를 만났다. 만날 날을 세며 치열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선물을 하면 좋아할까. 당신의 팬인데, 꼭 티를 내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다 가진 사람인 듯했다. 그래서 기부를 했다. 대형견 중성화 수술, 유기동물 의약품, 그 외 다양한 유기견과 관련한 곳에 야금야금. ‘동물을 사랑하는 그라면 내 행동을 반겨주겠지?’라는 계산된 마음으로 기부했다. 수줍은 맘에 바로 자랑하진 못 했다.
나는 이번에 그의 활동을 영상으로 옮길 감독 역할을 맡았다. 일단 의젓한 성인이니까 내게 주어진 역할 먼저 소화하고 나아중에. 언니가 슬쩍 물 마실 때를 틈타 말을 뱉었다. “여기 오기 전에 선물 드리고 싶었는데 필요한 게 없으실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돈으로 유기견들에게 기부하고 왔어요“ 박자를 놓쳐 허겁지겁 외쳐지는 랩 가사처럼 말했다. 그리곤 칭찬을 기다리는 아가처럼 기다렸다. 언니는 말했다. “아유 그래? 잘했다”. 이 담백한 칭찬 하나를 듣기 위해 얼마나 기다렸는지.
https://www.youtube.com/watch?v=8oc5RUHdj9A
모두가 진심인 날이었다. 10년 차 유기견 봉사러 효리 언니가 펫박스라는 회사를 찾아갔고, 이 회사는 유기견들을 위해 1억 원 어치 견사를 기부했다. 반려동물과는 인연이 없어 이들의 생활에 인간보다 큰 관심 둔 적 없었으나 이날부터 나는 많은 동물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기획하며 읽고 시청한 수많은 콘텐츠를 기억하고 있는 이상, 도움이 필요한 약자의 존재를 눈치챈 이상 그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효리 언니를 향한 사랑이 주제인 글 같겠지만 사실 ‘계기’에 대한 이야길 하고 싶다. 이날을 시작으로 나는 유기견 유기묘들을 위해 더 자주 기부하기로 했다. 그를 또 만나 칭찬받을 날이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0에 수렴하겠지. 근데, 상관없다. 이날은 좋은 계기가 되어 주었다. 나는 자주 계기가 될 것들을 찾는다. 돈 쓸 곳은 너무나 많고 원하는 모든 곳에 쓰기란 쉽지 않아. 근데, 이런 계기가 생기면 어떻게든 쓸 수밖에 없잖아. 멋진 사람 덕분에 기부에 대한 근사한 계기가 생겼다. 비록 시작은 계산된 마음이었지만 뭐 어때. 덕분에 나는 진심으로 동화되었고 유기견들은 집이 생겼다. 바래본다. 무럭무럭, 세상에 많은 계기가 계속해서 피어나기를.
https://www.youtube.com/watch?v=YqJMh0vIEss&t=7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