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부터 5월 초까지는 파리 거리를 누비며, 꽃 피는 자리마다 그대로 멈추어 한참을 서성였을 것이다. 때때로 햇살이 이마를 쪼아대고 바람이 꽃잎을 흩날리고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헝클어대는 찰나의 순간 한복판에 닿으면,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을 것이다.
낮에는 성당 몇 군데를 돌며 기도할 것이다. '이번 여행이 무사히 끝나게 해 주세요!' 그 밖의 다른 소원은 없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 개선문에 가 닿을 것이다. 튈르리 공원 근처에서 아이스크림도 핥짝이고, 빵도 베어 물고, 커피도 홀짝일 것이다. 양파수프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틈 날 때마다 먹어야겠다. 때로 길을 잃거나 힘이 달려 멈춰야 하는 때가 오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스테이크도 썰고, 와인도 곁들여 마시며 오래도록 쉴 거다.
몽마르뜨 언덕은 위험하다던데, 이곳에 동행할 일행을 구해 같이 올라가면 다들 어리바리한 내 걱정을 좀 덜 수 있을 테다. 말이 나온 김에, 가고 싶은 곳을 표시한 종이 지도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 지도 고민해봐야겠다(대체 여행할 때마다 잃어버리거나 망가뜨린 휴대전화가 몇 대인지, 휴!). 바닥이 폭신하면서도 아무렇게나 여며 입은 트렌치코트와 잘 어울리는 운동화가 뭐가 있더라? 미술관에 가는 날에는 운동화만큼 편한 플랫 슈즈를 신어야 할 테다.
에펠탑은 낮에도 가고, 밤에도 갈 것이다. 싸가지고 간 넉넉한 크기의 손수건을 깔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서 쉬어야겠다(사람 없는 시간대는 언제인지 알아봐 둬야지). 부모님은 바토무슈를 타고 센 강을 건너며 바라본 에펠탑 야경이 정말 좋다고 하셨다. 나도 그걸 타봐야겠다.
프랑스 관광청 kr.france.fr
짬이 날 때마다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오랑주리를 뱅글뱅글 돌며 전율을 느끼게 하는 작품 몇 점을 기억해 둬야겠다. 시간이 나면 그곳에 다시 가서 오래도록 그 작품을 바라볼 것이다. 눈이 아득해질 때까지. 발터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가 여기 있구나, 하는, 그런 작품은 몇 점이나 발견할 수 있을까?
아, 수영장에도 가야지! 단돈 3유로로 입장할 수 있는 수영장도 알아뒀다. 피신 조르주 발레리(Piscine Georges Vallerey). 불어를 몰라서 번역 페이지를 봤는데, 한 조각 또는 두 조각 수영복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내게는 예쁜 원피스 수영복이 있다. 너무 예뻐서 강습 시간에는 입지 못하고, 자유수영 때만 입는. 그걸 가져가야겠다(요즘 운동을 못 해서 배가 좀 나온 것 같은데, 힘을 좀 줘야 하는 걸까). 날이 좋으면 수영장 지붕을 열어준다고 하니, 동생이 준 수경에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없어도 괜찮다. 햇살이 내 오른쪽에 있을 때면 평영으로, 왼쪽에 있을 때면 자유형으로 헤엄치면 되니까.
www.vallerey-piscine.fr
수영장 염소 냄새와 샴푸 냄새와 비누 냄새가 파리의 밤공기와 잠깐 섞일 수 있게 밤거리도 조금 걸어야겠다. 강아지와 아이에게 유독 인기가 많은 나는, 자주 걸음을 멈추고, 안녕, 사랑스러운 귀요미들, 하고 눈인사를 나눌 것이다.
매해 가을이 되면,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의 <April in Paris>를 들으며 그다음 해 봄에는 파리에 가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아무리 미와 시를 반음씩 낮춰 연주하는 블루노트라지만, 그것 외에도 반음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허밍으로 따라 부르기도 어려운 이 곡은 가사가 정말 달콤하다(루이 암스트롱과 듀엣으로 부른 곡이 더 유명하지만, 나는 밝은 편이 더 좋다). 마감이 있는 직장인이라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짬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바이러스가 내 여행길을 막을 줄이야! 상상이라 더 아름답고, 그래서 잠깐 행복했다. 글만큼 좋은 위로도 없는 것 같다.